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장악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사 및 유관단체 수장에 특보 출신을 임명해서 그동안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프로그램을 손보는 시나리오가 준비되고 있다. KBS 가을개편에 관한 10월29일 언론보도를 보면, <미디어포커스>와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프로그램 명칭, 시간, 제작진의 교체가 고려되고 있다고 한다. MBC <PD수첩>은 경영진의 사과방송 외에도 제작진들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
정부와 방송사 경영진 그리고 조중동을 포함한 보수집단들은 그동안 해당 프로그램들이 객관성, 공정성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해 왔다. 이들에게 객관성과 공정성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 선’인양 인식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객관성과 공정성이 방송프로그램을 평가하기에 충분한 기준인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킨 방송은 무조건 옳은 것인가. 정부와 경영진의 주장대로 해당 프로그램들이 반정부적인 태도를 일관하며 객관적이지 않거나 공정하지 않을 의도를 갖고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었던 것일까.
본 연구소에서는 객관주의 보도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경향에서 언론이 해야 할 ‘검증의 저널리즘’이라고 본다. 공정성 개념 역시 수정이 요구된다. 공정성은 갈등적 사안에 대해 양적인 균형을 맞추거나 가치가 배제된 보도양태가 아니라, ‘검증의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검증의 도구’라고 보았다. 끝으로, 현행 방송법과 방송심의규정, 방송사의 제작가이드라인에 포함되어 있는 추상적 객관성, 공정성 개념의 수정을 제안한다. 영국이 오랜 방송 역사를 통해 ‘적절한 불편부당성’ 개념을 창안했듯이, 우리도 시대에 맞는 그리고 다양한 공중이 동의할 수 있는 방송프로그램 평가의 철학과 원칙을 재정립 할 때이다.
이하에서는 객관성, 공정성 논란이 일었던 미국산 쇠고기 파문과 2004년 대통령 탄핵보고서 사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최근의 언론현실과 관련해 수동적 객관주의 보도관행의 부활에 대한 우려점을 살펴본다. 끝으로,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타율적, 자율적 규제 가운데 객관성과 공정성 개념의 수정을 제안하고자 한다.
- 미국산 쇠고기 및 촛불집회 방송의 사례 : 객관성, 공정성 아닌 진실추구의 경향으로
최근 방송의 객관성, 공정성 논란이 일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보도와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방송과 관련한 논란을 통해 객관성, 공정성 개념과 적용의 한계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미국산 쇠고기 관련 방송의 예를 보자.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방송의 경우, 방송이 사실과 다르거나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실과 다르다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부풀려졌다는 것은 다양한 측면 가운데 하나의 견해만 주도적으로 채택되었다는 공정성 논란을 불러왔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논란을 제기하였을 뿐 무엇이 진실인지를 캐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미국 현지에 파견중인 많은 언론사 특파원들 가운데 PD수첩 제작진 수준의 노력과 공을 들여 반증하려고 했던 언론사는 없었다. 저널리즘의 기본에 충실해 의제를 제기하고 사회적 담론의 수준으로 논의를 확장하기 보다는, PD수첩 보도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갈등을 먹잇감 삼아 시청률과 광고수익 올리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촛불집회 관련 논란은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대중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는 공정성보다 균형성 비판에 가깝다. 반대하는 측과 찬성하는 측의 반영비율이 한 쪽으로 치우쳤다는 불균형 혹은 편파 논란이다.
공정성 논란의 비교를 위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보도를 참고할 만하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관련 방송보도를 분석한 한국언론학회는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하지 않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당시 언론학회 보고서는 다양한 분석 기법을 통해 보도 및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분석했는데, 양적으로 탄핵 반대에 치우쳤고 질적으로도 탄핵반대를 긍정적, 탄핵찬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학계에서 저널리즘의 공정성 개념은 하부 개념으로 진실성, 적절성, 균형성, 중립성, 다양성 등 다차원적으로 논의되어 왔는데, 언론학회 보고서의 공정성 개념은 주로 ‘균형성’에 치우쳐 있다. 그래서 당시 보고서에 대해 ‘기계적 균형’이 곧 공정성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라는 비판이 우세했다. 당시 이효성(2004)은 공정성이 중립성이나 산술적 균형과 동의어가 아니라며 BBC의 <제작자지침>을 인용해 설명했다. <제작자지침>에는 “산업적 또는 정치적 논란의 문제를 보도함에 있어서 상이한 주요 견해들은 그 논쟁이 활발한 동안에는 ‘적절한 무게’가 주어져야”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효성은 ‘적절한 무게가 주어져야 한다’는 말이 의견의 지지도에 따라 보도의 양이 달라야 한다는 뜻으로 수학적 균형이 공정한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의견을 더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이 공정하다는 것이라며 학회 보고서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탄핵 당시와 미국산 쇠고기 보도의 유사성에 비춰볼 때, 역사적으로 100만 명 가까운 시민이 거리에서 촛불집회를 벌이는 현상에 대해 ‘무게를 실어주는’ 보도는 오히려 적절한 불편부당성의 보도준칙을 지킨 공정한 보도였다고 할 수 있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Kovach, B. and Rosenstiel T., 2001)은 공정성이 그 자체를 위해 추구되거나 저널리즘의 목적으로 쓰여서는 안 되며, 더욱 철저한 검증과 사건에 대한 신뢰할만한 보도에 접근하도록 도움을 주는 기술장치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처럼 공정성은 저널리즘이 도달해야 할 목적이라기보다는 언론의 진실추구에 도움을 주는 장치이자, 검증의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촛불집회 관련 방송의 객관성 논란도 뜨거웠다. 저널리즘의 객관성은 진실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언론인과 언론사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기준이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 언론이 정권의 압력에 굴복해 정부 비판적인 내용을 보도하지 못한 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외면하고 진실추구의 노력을 하지 않은 객관성이 실추된 보도였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거리에서 전국적으로 벌이는 촛불집회 소식을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다룬 것은 진실을 전하는 저널리즘의 의무에 비추어 상당한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다. 왜곡하거나 은폐하지 않았고 언론이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즉, 언론은 본질적으로 진실을 보여줄 수는 없으나 진실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이 곧 언론의 객관적 보도이다.
이상의 사례를 볼 때, 언론의 객관보도는 단지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이 진실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가려내는 진실추구의 경향 즉 검증의 여부 및 방법이다. 공정성은 균형성만으로 측정되기 어려우며, 갈등적 사안에 대해 여론에 무게를 주어 보도하는 것은 공정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 객관주의 관행과 전문인주의의 한계 : 기계적 중립으로의 회귀 가능성
방송제작자들은 공정성, 객관성 논란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냐며 혼란스러워한다. 최근 정권의 언론장악 국면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면, 언론이 향후 기계적 중립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그것이 곧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라고 항변할 우려도 크다. 그러나 검증의 저널리즘 원칙이 공고하지 않은 우리 저널리즘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도할 경우 불거질 문제점은 적지 않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부터 우리 언론에 있어 객관적 보도란 있는 그대로의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객관주의 관행을 내재화해 왔기 때문이다.
김민환(2007)에 따르면, 언론의 객관주의가 개화기 이래 줄곧 제약을 당해왔는데, 개화기 신지식인들의 국민계몽의 수단으로, 일제치하 총독주의 통제의 수단으로,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의 선전/선동 수단으로 언론이 이용됨으로써 객관주의가 유린되었다. 군부독재 시대에 언론은 개발독재의 동원수단으로 전락했고, 이 시기 객관주의는 타율적으로 억압되고 자율적으로 유보되었다. 강명구(1994)는 한국 객관보도의 관행이 기존가치질서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며 사건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기 보다는 개별화한 인간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통제적 상황에서 우리 언론이 받아들인 객관주의 보도관행은 실행윤리로서 전문인주의(professionalism)를 낳았다. 언론인은 법조인이나 의사와 같이 사회적으로 위임받은 책무가 있으며 그들의 직무는 훈련을 통해 습득한 전문적인 소질을 바탕으로 현실을 제3자적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전문인주의는 언론인으로 하여금 현실로부터 비개입적인 존재로 자리하게 하였고, 객관주의는 곧 현실에 대한 검증이나 이면의 내용을 보도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따라서 그동안 우리 언론은 역사적으로 진실추구 경향, 방법으로서 객관보도를 실행해 온 것이 아니라, 내외적 압력과 통제 환경에서 부여된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비개입적 언론인의 태도를 저널리즘의 주요 가치로서 받아들였는데 그것이 곧 객관주의 보도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다.
- 방송규제와 방송의 자유 : 자유와 자율 보장은 언론의 기본, 추상적 규제개념 수정해야
최근의 논란에서 볼 때 향후 방송 제작자들은 추상적인 객관성과 공정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럴 경우 개인적, 집단적 자기검열을 통해 기계적 중립의 보도경향이 늘어날 개연성이 높다. 방송 제작자는 물론이고 학계, 시민사회가 갈등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객관성과 공정성 원칙을 적용해 비평하고 대응하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한다. 진실추구를 위한 검증저널리즘의 방법으로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정의하고, 제작자들로 하여금 자율성에 기반해 심층적이고 창의적인 수준 높은 저널리즘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행 규제장치와 방송사 제작가이드라인에 명시되어 있는 객관성, 공정성 개념을 우선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현재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방송법 제6조 제1항(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과 제2항(성별·연령·직업·종교·신념·계층·지역·인종 등에 차별금지) 그리고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의 공정성(제9조 제2항·제3항) 및 객관성(제14조)에서 명시하고 있다. 또한 방송사의 자율적인 제작 가이드라인에서도 객관성과 공정성은 빠지지 않는다. 영국이 오랜 방송의 역사를 통해 적절한 불편부당성 개념을 창안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현실에 맞는 방송 저널리즘의 기준과 요건을 철학적, 실용적으로 재구성할 때이다.
끝으로, 저널리즘의 요건을 논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가치는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다. 부르디외(Bourdieu, P., 1994)는 저널리즘이 다양한 압력으로 인해 자율성이 상실되었다고 보았는데, 결국 저널리즘의 자율성이 회복되기 위해 타율적 언론인 및 지식인들과 싸워야 한다고 논했다. 또한 부르디외는 저널리즘 장의 자율성이 확보될 때 학문·정치·지식인들의 장도 자율성을 갖게 된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YTN 언론노동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언론자유와 언론인의 자율성 수호 노력이 언론자유의 민주적 가치를 존중하는 지식인과 언론인들에 의해 지지받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정부의 방송에 대한 개입이 합리적 규제의 수준을 넘어 자유와 독립을 침해하는 억압과 통제의 수준으로 확대될 때, 언론인과 지식인, 시민사회의 노력이 더욱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강명구(1994), 『한국저널리즘 이론』, 나남.
김민환(2007), “한국 언론과 객관주의 보도원칙”, 임상원 외, 『민주화 이후의 한국 언론』, 나남.
이민웅 외(2004), ‘대통령 탄핵관련 TV 방송 내용분석“, 한국언론학회.
이효성(2004), “공정성은 ‘기계적 균형’과 동의어 아니다”, 오마이뉴스 인터넷판, 2004년6월11일.
Kovach, B. and Rosenstiel T. (2001), The Elements of Journalism, New York: Crown Publishers, 이종욱 역(2003), 『저널리즘의 기본요소』, 한국언론재단.
Bourdieu, P. (1994), On Television. New York:New Press, 현택수역(1998), 『텔레비전에 대하여』, 동문선.
기자의 전문성은 저널리즘에서 객관성만큼이나 주요하게 연구되어온 주제이다. 기자의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한 전문 기자제도는 뉴스의 질 제고를 가장 큰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전문기자는 전문가적 지식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취재와 비판적 접근태도를 가지며 사회지배세력인 정책결정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자를 말한다.
한편 1990년 후반부터 도입된 전문 기자제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기자의 출입처를 한정하는 행위 등은 관련 기자의 전문성을 고양시키고, 취재의 편의를 제공하기위한 것이다. 기자의 전문성은 저널리즘의 주요한 가치이자 덕목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김사승은 기자의 전문성을 논하면서 Specialism과 Professionalism은 구별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스페셜리즘은 기자의 취재능력과 관련된 기술적인 측면이며, 프로페셔널리즘은 기자의 윤리적인 측면에 연관된다.
지난 10월 16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인 신학림 (현 미디어행동 집행위원장)이 이날 국정감사가 열리는 한국언론회관 19층에서 시위 도중 연행됐다. 이에 대한 매체의 보도 행태는 기자의 스페셜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을 재고하게 한다. 이에 대해 ‘독립신문’이나 ‘프리즌 뉴스’ 등과 같은 저널리즘을 기대하기 힘든 인터넷 매체들은 ‘난입’, ‘폭력행사’, ‘취중 폭력’ 등 사실이 아니거나, 확인할 수 없는 추측성 기사로 선전성만 집중하기도 했다. 이러한 매체는 논외로 하고, 이를 뉴스화한 주요 매체(전국일간신문, 지상파방송)를 대상으로 모니터를 실시했다. 사건 당일(방송은 16일, 신문은 17일), 주요 방송사와 일간신문의 뉴스 보도는 다음과 같다.
조선일보 전(前) 언론노조위원장 국정감사장에 난입 (2008-10-17)
중앙일보 전 언론노조 위원장 난입 … 문방위 파행 (2008-10-17)
동아일보 前 언론노조위원장, 진성호 의원에 폭언 (2008-10-17)
한국일보 시위·항의·정회… 문방위 국감 '파행' (2008-10-17)
한겨레신문 국감 시작전 한나라의원에 항의 / 신학림 전 위원장 경찰에 연행돼 (2008-10-17)
서울신문 바람 잘날 없는 문방위 (2008-10-17)
문화일보 신학림 前 언론노조 위원장 ‘국감장 난입’ 불구속 입건 (2008-10-17)
SBS 국감장 시위... 파행 (2008-10-16)
* 8월 16일과 17일, 방송보도는 지상파 3사 가운데 SBS 보도가 유일하다.
** 전국신문을 대상으로 언론재단, <http://www.kinds.or.kr>에서 검색하였고, 검색되지 않은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해당 일자 신문을 확인했다.
이러한 주요 언론의 보도를 분석하면 사건에 대해 각 언론사 마다 규정과 기사의 초점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각 언론사의 이 사건에 대한 규정과 기사의 초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일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의 국정감사가 전직 언론노조 위원장의 국감장 난입 소동으로 파행
중앙일보 문방위가 시민단체 회원의 난입으로 시작이 지연되고, 이로 인한 여야 간 공방으로 정회되는 등 또다시 파행
동아일보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16일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 들어와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의 언론노조 관련 발언에 항의하며 어깨를 밀치는 등 국감을 방해
한국일보 시위와 정회 등 파행
한겨레신문 국감 시작전 한나라의원에 항의 / 신학림 전 위원장 경찰에 연행돼
서울신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국감이 매번 매끄럽지 못한 진행
문화일보 신학림 前 언론노조 위원장 ‘국감장 난입’
SBS 방송통신위 국감에서는 국감장 앞에서 벌어진 시위 문제로 파행
위의 사건 규정에서 살펴보면 조선, 중앙, 동아, 문화는 신학림 전 위원장의 개인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국감장을 ‘난입’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일보, 한겨레, 서울, SBS는 국감장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디어행동의 ‘시위’에 그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직 노조위원장의 ‘난입’과 ‘폭언’이라는 개인의 행동과 ‘국감장 앞에서의 시민단체의 피켓시위’는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사라고 볼 수 없을 만큼의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감장 앞에서 10여 명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었고, 그 자리에는 현 언론노조 위원장도 참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행위’ 그 자체, 혹은 개인의 행동을 둘러싼 상황 전달은 수용자들에게 개인의 ‘행위’를 통해 사건을 규정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혼란을 주기 쉽다. 이는 지난 1999년, 2001년 지하철 총파업 당시, 언론이 지하철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지하철 안전을 위한 요구는 무시하고, 시민들의 불편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보도이다. 이때에도 지하철 노동자들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며 파업의 정당성에 위해를 가하기도 했다. 이 사건에서도 신 전 위원장의 행위에 대한 기술을 살펴보면 이러한 보도 관행은 더욱 잘 드러난다.
조선일보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이 국감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왜 언론노조가 친노(親盧·친 노무현 성향) 단체인가"라고 따지며 소란
국감장까지 따라 들어가 계속 진 의원을 위협했고 주변 사람들이 제지
중앙일보 한 시민단체 회원의 난입으로 시작이 지연
한나라당 의원들과 고성이 오가는 등 5분여간 소란을 빚은 뒤 신씨는 국감장을 나갔고 곧 경찰에 연행
동아일보 진 의원을 향해 “언론노조가 친노 단체인 증거를 대봐라”고 소리를 지르며 앞을 계속 막았다. 그는 국감장 안까지 쫓아 들어가 삿대질을 하며 피해서 걸어가는 진 의원의 어깨를 밀었다.
한국일보 국감 회의장에서 실랑이
한겨레신문 신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55분께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1층에서 진 의원을 만나, 진 의원에게 “(지난 9일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노조를 친노 노조라고 규정한 근거를 대라”고 따지다가 오전 10시40분께 서울 남대문경찰서 소속 사복경찰들에게 연행됐다.
서울신문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의 발언에 대해 항의하면서 국감장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
문화일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에게 “언론노조가 친노 단체인 증거를 대봐라”고 소리 지르며 앞을 가로막고, 국감장 안까지 쫓아 들어가 삿대질을 하며 진 의원의 어깨를 밀친 혐의를 받고 있다.
SBS 지난 10일 언론노조를 친노 성향이라고 발언한 배경을 따져 물으며 소동
위의 언론의 사건에 대한 기술 가운데 조선, 중앙, 동아, 문화와 같이 “난입”, “위협”, “소란”, ”삿대질“, ”어깨를 민 행위“ 등과 같이 감정적인 표현이 포함된 경우와, 한국, 한겨레, 서울, SBS와 같이 행위에 대한 중립적인 기술이다. 중립적 기술은 계략적으로 행위를 묘사하지 않지만, 조선, 중앙, 동아, 문화 등의 매체는 감정적 표현과 함께, 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이러한 행위의 묘사가 신 전 위원장의 진술 뿐만 아니라, 이들 언론에서 피해자로 거론한 진성호의원의 진술과도 다르다는 점이다. 신 전 위원장은 <미디어스>를 통해 발표한 <난 국감장에 있었을 뿐이고!>라는 기고문을 통해 자신의 행위의 경과를 밝혔다. 이글에서 신 전 위원장은 자신이 어떠한 ‘위협’도, ‘난입’도, ‘삿대질’도, ‘어깨를 민 행위’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신 전 위원장의 관련 글은 다음과 같다.
진성호 의원의 모습이 보였다. 국정감사장에서 7~8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다가 진 의원에게 악수를 건넸다. 악수를 한 채 몇 걸음 걸어가며, “진 의원, 그런데 언론노조가 친노(친 노무현) 단체란 근거를 구체적으로 한 번 대 보시오”라고 말했다. 그 순간 진 의원은 악수하던 손을 뺐고, 기자는 국정감사장 출입문 밖에서 진성호 의원 앞에 서서 “근거를 대 보라”고 다시 한번 얘기했다.
진 의원은 다른 말은 일절 하지 않고 “당신하고 이야기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다”고 말하며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에는 많은 기자들과 사진기자와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이 있었다.
기자도 천천히 회의장으로 따라 들어갔다.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진 의원에게 다시 요구했다. “언론노조가 친노 단체라는 근거를 대지 못하면 공개적인 방법으로 사과하세요”라고,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그 때 이정현, 주호영 의원 등이 들어와 “국정감사장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며 불특정 피감기관 관계자들에게 호통을 쳤다. 약간의 술렁임이 있었고, 기자는 “언론노조가 친노 단체란 근거를 대 봐!”라고 이야기하고 바로 회의장을 걸어 나왔다. 그 때가 9시58분경이다.
<미디어스>, 난 국감장에 있었을 뿐이고!,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40
신 전 위원장의 발언은 언론이 피해자라고 지적하는 진 의원의 국감 진술에도 잘 나타난다. <미디어오늘>에 의하면 진 의원은 “신체적으로 위해를 당한 것은 없다. 그러나 집요하게 따라오며 항의받는 게 국감 시작 전에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진 의원도 위해를 당한 적이 없고, 욕설을 들은 바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두 당사자의 진술에 의하면 사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언론은 모두 오보를 한 것. “위협”을 받은 바 없기 때문에 조선일보의 보도는 잘 못된 것이며, “난입”한 바가 없기 때문에 중앙일보의 보도역시 잘 못된 것이다. 또한 “폭언”을 한 바도, “어깨를 밀치”는 등의 ‘신체적 위해’가 없었기 때문에 동아일보의 보도는 오보이다. 문화일보의 보도 역시 잘 못된 보도이다. 당사자 모두 부정하는 소설을 일부 언론이 기사라고 국민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보도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감장 앞 시위를 통해 요구하는 바, 주장하는 바를 어떠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일부 언론의 매체의 ‘음모’를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다음은 관련 기사에서 시위 내용에 대한 전달이다.
조선일보 언론노조 회원 10여 명도 국감장 입구에서 '방송법 시행령 개악, 미디어렙 도입 결사 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한 시간가량 시위를 했다.
중앙일보 국감장인 한국프레스센터에는 오전부터 언론노조 회원 10여 명이 모여 민영 미디어렙 도입 반대와 YTN 직원 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동아일보 -
한국일보 국감 회의장인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오전 10시께 언론노조 회원들이 민영 미디어렙 도입 반대와 YTN 노조원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로 의원들을 맞았다.
한겨레신문 -
서울신문 -
문화일보 -
SBS -
위의 기사에서 시위의 내용을 전달하는 매체는 조선, 중앙, 한국이다. 이 세 매체는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며, 동일한 오보를 낸다. ‘언론노조 회원 10여명’, ‘언론노조 회원들’이 미디어랩 도입 반대와 YTN 노조원 해고 철회 등을 요구했다고 각각의 매체들은 전달하고 있지만, 이날 피켓시위를 한 단체는 ‘미디어행동'으로 언론노조 회원들과 무관한 사람들도 당시 현장에 있었다. 언론노조는 ’미디어행동‘이라는 시민 연대 단체에 참여하고 있는 48개 단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들 매체가 ’언론노조 회원‘을 강조한 이유는 ’전 언론노조위원장‘이라는 개인의 행위를 강조하기 위한 작문(作文)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문은 기자의 프로페셔널리즘에 해당하는 윤리성을 져버린 것이다.
또한 거의 모든 매체의 기사가 전 언론노조위원장 개인의 ‘행위’나, 이로 인한 국정감사장의 ‘파행’사실만을 전달하고 있다. 정작 이날 국정감사장에서 예정되었던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대한 국감과 관련해 ‘미디어행동’이 피켓시위를 통해서 주장했던 민영미디어랩 도입의 문제와 같은 ‘내용’에 대한 전달을 한 매체는 없다. 이는 기자의 스페셜리즘이라는 측면을 의심하게 한다. 미디어와 관련한 뜨거운 현안을 놓고 논란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논란에 시민단체까지 가세했지만 정작 기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국정감사의 모습을 여․야의 공방으로 스케치함으로서 당일 피켓시위를 통해 ‘미디어행동’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끼일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