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소유 대기업 상한선 10조 안 된다!
- 합리적 기준의 설정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제안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IPTV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별다른 사회적 논의도 없이 미디어 소유 대기업 상한선을 현행 재산규모 3조원(상초출자제한 기업집단)에서 10조원으로 급상승시킬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언론보도를 보면, 6월 중순 청와대 업무보고 예정인 로드맵 ‘세계일류 방송통신 실천계획’에서 6월 안에 이 기준을 10조원으로 높이는 것으로 돼 있다.
방통위의 이런 방침은 졸속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현행 3조원이란 기준이 마련된 역사적 배경에 비춰볼 때도 그렇고, 정부 부처 끼리 전혀 조율도 되지 않은 방안이기 때문에도 그렇다. 미디어 소유 대기업 기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위해 연구소의 의견을 밝힌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변천과정>
* 첨부파일 참조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상호출자제한제도의 목적
현행 방송법에서 지상파방송, 보도전문PP, 종합편성PP를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을 마련하는 근거는 공정거래및독점규제에관한법률의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이다.
출총제는 특정 시장에서 독과점 방지가 아닌 경제 전반 차원에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한 사전규제 장치이다. 한국의 재벌체제의 특성을 감안해 순환출자 등을 통한 문어발 확장을 막는 데 목적이 있다. 현재 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인 대기업집단 가운데 자산액이 2조원 이상인 기업들이 적용대상이다(출자한도는 순자산액의 40%). 끊임없는 완화 속에서 무수한 예외 규정이 생겨나 현재는 누더기가 돼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년 4월 15일 출자총액제한제도 전면 폐지안을 입법예고한 상태이다.
출총제가 다른 국내 회사에 대한 출자를 제한하는 사전규제인 반면, 상호출자제한제도는 동일한 기업집단에 소속된 계열사끼리 출자를 주고받아 가공자본을 창조하는 이른바 ‘상호출자’를 제한하기 위한 사전규제이다. 적용 대상은 자산 규모가 2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의 기업들이다. 공정위는 2008년 4월21일 이 기준을 5조원으로 높이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이다.
현행 미디어 소유 대기업 기준의 역사적 배경
현행 방송법은 지상파방송, 종합편성PP, 보도전문PP를 소유할 수 없는 대기업 기준으로 출총제와 상출제를 삼았는데, 문제는 2002년 12월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빚어졌다. 공정거래법의 기준조차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정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2002년 당시 출총제 기준은 자산규모 5조원 이상, 상출제 기준은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이었다. 애초 출총제 기준에 따라 방송위는 자산규모 5조원 이상으로 설정하려 했으나, 공정위는 출총제가 기준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방송위는 상출제 기준을 5조원으로 변경했다. 그러자 한 홈쇼핑업체가 반발했고 결국 다른 홈쇼핑업체들과의 형평성을 꾀하기 위해 이 기준을 3조원으로 낮췄다.
결국, 홈쇼핑업체들로 인해 지상파방송과 종합편성PP, 보도전문PP를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이 자의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3조원이란 기준은 당시 공정위의 상호출자제한 기준인 2조원보다도 훨씬 더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내 방송의 여론과 직결돼 있는 대기업 기준을 정하면서 훨씬 느슨한 입장을 취한 것이다.
과거 오류 답습하는 방송통신위
옛 방송위는 해체되기 직전인 지난 2월 갑자기 방송법 시행령을 바꿔 미디어 소유 대기업 기준을 상출제 기준 10조원으로 급등시켰다. 방통위는 이를 근거로 IPTV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보도전문PP와 종합편성PP를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 상한선을 10조원으로 설정하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방통위의 이런 태도는 다른 행정기구의 정책방향과도 어긋난다. 공정위는 상호출자제한 기준을 2조원에서 5조원으로 높이겠다고 하고 있는 반면, 방통위는 한술 더 떠 미디어 소유 대기업 기준을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높이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통위 고위관계자는 10조원이란 기준을 더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이는 대기업의 기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봉쇄하고 10조원을 기정사실로 만들기 위한 ‘꼼수’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적어도 부처 행정기구들 사이에서 최소한의 일관성을 지니려면, 수준이 적정하느냐의 문제를 떠나 ‘5조원'으로 통일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타당하다. 방통위는 상출제 적용 기준보다 미디어 소유 대기업 기준이 왜 5조원이나 더 높아야 하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방통위의 독자적인 대기업 기준 있어야
출총제가 폐지되면서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한 사전규제 장치가 없어지고, 상출제 기준도 완화하는 상황에서 방통위가 자체적으로 미디어를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에 대한 독자적인 작업을 할 필요성이 있다. 지상파, 종합편성PP, 보도전문PP는 ‘여론'과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 방송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에 대한 규정은, 상출제만으론 부족하다. 전체 방송시장의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과거나 현재에 미디어를 소유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는지 여부가 포함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현행 출총제 적용 예외 기준 가운데 ▲지배구조 모범기업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 ▲계열사 수가 일정한 수 이하인 기업집단 ▲소유-지배 괴리도가 일정 수준 이하인 기업집단 등을 차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경제 전반의 경제력 집중을 예방하기 위한 기준은, 여론시장의 집중 예방에도 충분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단상>
‘광우병 촛불’의 발생 배경과 의미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조준상
‘광우병 촛불’은 현재진행형이다. ‘협상무효’와 ‘고시철회’라는 정당한 요구가 수용될 조짐이 없자, 참여자들은 ‘이명박 퇴진’이라는 구호를 너나없이 자연스레 외치고 있다. 그런 만큼 현 시점에서 광우병 촛불의 성격을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현실이 잉태하고 있는 미래는 언제나 열려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예상치 못하게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광우병 촛불을 치켜든 배경을, 달리 표현해 ‘디지털 노마드’가 자연스레 집결하는 ‘오아시스’를 형성한 요인을 분석하는 데 한정하기로 한다.
몇 가지 요인을 꼽자면 이렇다. 무엇보다, 향후 광우병 위험에 노출돼 최대 피해자가 될 세대가 바로 자신들임을 직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 학생은 알 수 없는 국익을 내세워 정부가 자신들을 잠재적인 최대 피해자로 만들었음을 알고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이전과 달리 먹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친 주체가 정부 자체라는 데 있다. 이는 항의의 수단을 거리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배경을 이룬다.
둘째, ‘효순이 미선이 촛불’ 때처럼 박탈된 민족 자존감이 깔려 있다. 알 수 없는 국익을 이유로 진행된 졸속·굴욕 협상이 이들 학생의 자존감을 건드렸을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2002년 월드컵 때 형성됐던 ‘상상의 감정 공동체’가 착근하지 않았을까 싶다.
셋째, 현 정권 들어 쏟아낸 영어몰입 교육, 자율형 사립고 등 서열화 강화를 부추기는 교육정책에 대한 반감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정책의 피해자가 온전히 자신들임을 안다는 것이다.
넷째, 디지털 감성세대의 특성이 신속한 인식의 공유를 가능하게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무장하고 채팅과 메시지를 통해 공감대를 쉽게 확인하고 확산했다는 것이다. 다섯째, 시기적으로 중·고등학교의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여섯째, 광우병 촛불이 발생하는 초기조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바로 ‘최초의 문제제기자’이다. 누구인지는 열려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터넷을 포함한 현 정권의 전반적인 미디어 재편 정책의 방향은 최초의 문제제기를 앞으로 점점 더 어렵게 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우병 촛불의 전개과정을 보면, ‘소리없이 은밀하게 다가오는 광우병 위험’에 대한 통찰과 직관이 남녀노소 각계각층으로 퍼져 감을 알 수 있다. 좀 더 풍부한 평가는 나중에 맡겨야 하겠지만, 광우병 촛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막연한 국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 특히 어린 학생들의 생명을 담보로 먹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졸속·굴욕 협상을 벌인 정부에 대한 저항과 항의’이다. 광우병 촛불은 ‘먹거리 건강주권 반정부 연대’인 셈이다.
<미디어 정세분석>
18대 국회 개원과 미디어 재편 논의의 전망
18대 국회가 6월5일 개원한다. 개원을 전후해 이명박 정권(청와대, 행정부, 한나라당)내부의 미디어 재편 논의도 대략의 윤곽을 드러냈다. 흐름은 크게 둘로 나뉘어 있다.
일괄처리파
한 축은 한나라당 내 미디어발전특별위원회를 주도하는 정병국 의원, 새 정부 언론대책의 공개적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는 신재민 문화관광체육부 제2차관을 중심으로 내세우고 있는 9월 정기국회 일괄처리 계획이다(편의상 이들 주도세력을 일괄처리파로 분류한다).
신 차관은 지난 4월 일찌감치 공영방송 소유형태, 신문-방송 겸영 등 미디어 관련법을 전부 9월 국회에서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신 차관이 주도하는 문체부의 이런 노선에 정병국 의원이 동조하고 있다. 정 의원은 지난 5월21일 (국가기간방송법 제정, 한국방송광고공사 해체, MBC 위상 변화,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과 관련된) 법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해 모두 연내에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미디어발전특위와 문체부가 같은 견해를 밝힌 것이다.
단계처리파
다른 한 축은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가닥을 잡아가는 단계처리 계획이다(편의상 단계처리파로 분류한다). 최시중 위원장은 지난 5월23일 연내 방송법을 개정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사안의 맥락에 비춰볼 때, 여기서 일컫는 방송법 개정은 ▲국가기간방송법 제정 ▲MBC 민영화 ▲신문-방송 겸영 허용 ▲한국방송광고공사 해체 등을 모두 일컫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견해는 방통위가 6월 중순 청와대에 보고할 로드맵 세계일류 방송통신 실천계획에서도 확인된다. 이 계획은 한국방송광고공사 독점체제 개선, 종합유선방송 겸영규제 완화 등을 모두 내년 12월 추진하는 것으로 돼 있다. 단지 대기업 소유규제 완화만이 6월부터 추진한다고 돼 있다. 이는 IPTV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보도전문PP, 종합편성PP를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을 현행 자산규모 3조원 이하에서 10조원 이하로 완화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방송규제개혁 일정 추진시기
대기업 소유제한 완화 ’08. 6
종합유선방송 겸영규제 완화 ’09. 12
KOBACO 독점 체제 개선 ’09. 12
유료방송 요금승인제 개선 ’09. 12
유료방송 의무편성채널 축소 ’09. 12
위성방소 외국인 소유규제 완화 ’12. 12
발송발전기금 징수제도 개선 ’12. 12
출처 : <이데일리> 2008년 6월 2일
간극 축소는 정국 주도권 조기 회복 여부에...
이에 비춰볼 때, 일괄처리파와 단계처리파 간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현 정권 안에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역무 관할을 둘러싼 방통위와 문체부의 줄다리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미디어 재편 일정을 둘러싼 논의가 겹쳐진 셈이다.
일괄처리파와 단계처리파 중 누가 우세할지는 청와대가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관건이다. 아울러, 한나라당 미디어발전특위 안팎의 여론을 잡기 위한 두 세력 간의 치열한 논전도 예상된다. 문제는 현 정권이 상실한 정국 주도권을 언제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일괄처리파와 단계처리파의 넓은 간격은 급속히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18대 국회 개원을 맞는 현 정권의 1차 목표는 고소영, 강부자, 광우병 등으로 상실한 정국 주도권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선 국민의 관심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꼭 필요한 요건이다. 현재로선 ▲31개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원 감사 ▲KBS에 대한 감사원 특별감사 ▲신문유통원, 신문발전위원회 등에 대한 문체부의 감사 ▲검찰의 공공기관 수사 ▲신재민 제2차관의 일부 언론 협박 등이 동원되고 있는 수단으로 추정된다.
정국 주도권 회복의 구체적 목표는 ▲6월 말까지 305개 공공기관 중 240곳의 기관장 교체 ▲언론 길들이기(MBC와 KBS, 경향, 한겨레 등)를 통한 대정권 비판 여론 축소 ▲언론계 재편을 위한 관제고지 장악(KBS 사장 교체) 등으로 추정된다.
촛불시위, 치솟는 석유가격 그리고 감사원 감사
감사결과, 이들 공공기관의 심각한 방만함과 비리가 드러난다면 정국 주도권 회복을 위한 반전의 카드로 쓸 조짐은 이미 보이고 있다. 실제로, 감사원은 지난 3월10일부터 한국전력 등 31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공공기관 경영개선 실태 감사를 진행하며, 지금까지 무려 3차례(3월27일, 4월1일, 5월22일)나 보도자료를 언론에 뿌렸다.
공공기관의 비리 부각과 동시에, 현 정권은 전기, 수도, 가스 등 민감한 부문의 민영화를 유보하는 노련함(?)을 보였다. 이는 광우병 촛불집회·시위의 주요한 성과물이기도 하지만, 정국 주도권 회복을 위한 사전포석의 측면도 동시에 깔려 있다. 이런 성격은 2001년 민영화했던 원자력 및 화력발전 6개 자회사의 한국전력 재통합 추진에서도 감지된다.
광우병 촛불시위의 지속 여부는 현재 정국의 핵심이다. 중고등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 시기가 몰려 있는 6월 중순께가 중대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의 먹거리를 가지고 장난을 쳤다’는 분노가 계급·계층에 관계없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상황에서 촛불 시위·집회는 상당기간 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다 정부의 잘못된 환율 정책으로 말미암아 가뜩이나 높은 석유가격이 더 높아졌다는 사실이 널리 확산될 경우 촛불 시위·집회의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