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격동통신]'성공한 행정 쿠데타 이후 KBS는 관영의 길로'
2009년 08월 20일 (목) 19:43:24 김동준/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 mediaus@mediaus.co.kr
방송통신위원회, 감사원 그리고 검찰, 아니 현 정권이 총동원되어 정연주 KBS 전 사장(?)에게 씌운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 지난 8월18일 법원의 최종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상식 있는 시민 언론 단체나 정치인들은 일제히 '환영' 논평이나 성명을 발표했음은 물론이다. '사필귀정'이 역사의 박물관으로 처박히지 않았음을 보여준 판결에 대한 반응들이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두 가지를 둘러싼 것이다. 하나는, KBS가 내야 할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산정하는 방법과 관련해 국세청과 기한을 알 수 없는 조세소송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을고등법원이 마련한 'KBS의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 환급 조정권고안'을 정 전 사장이 수용함으로써 KBS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는지 여부다. 다른 하나는, 정 전 사장이 자신이 연임할 목적으로 법원의 이 조정권고안을 수용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두 사안과 관련된 10가지 쟁점에 대해 검찰의 기소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KBS에 손해를 끼쳤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연임을 목적으로 법원의 조정권고안을 수용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로 인해 정 전 사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해임무효확인 소송에서도 승소할 게 확실해졌다. 정 사장의 해임 사유가 바로 '업무상 배임' 혐의였기 때문이다. 이를 이유로 KBS 이사회는 KBS 안에 난입한 경찰력의 엄호를 받으며 해임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청와대는 대통령에게 KBS 사장 해임권이 있다는 법조문에 대한 창조적 해석을 통해 해임을 일사천리로 밀어 붙였다. 한 마디로, '행정 쿠데타'였고, 이 쿠데타는 성공했다. 이 '성공한 행정 쿠데타' 이후 KBS는 관영화의 길을 걸었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 사장에 대한 무리한 해임이 중심에 있는 이 쿠데타에 대해 법원은 해임 사유가 정당하지 않다고 결정을 내렸다. 사유가 정당하지 않으니 해임 그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다. 하기야, 워낙 비상식적인 일들이 횡행하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이고 보면, 해임 사유는 정당하지 않으나, 해임 절차에는 하자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해임은 정당하다'는 창조적인 판결을 내릴 일말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KBS 안에서 벌어진 '성공한 행정 쿠데타'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은 내려졌다. 문제는 이 판결이 갖고 있는 실천적 함의, 곧 '정당성 없는 성공한 쿠데타'를 어떻게 단죄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다. 해임 사유의 정당성이 없다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정 사장 해임 이전으로 KBS를 돌리기한 불가능하다. 현 정권의 중간계투 요원으로 등장한 이병순 현 사장(?)에 대한 직무정지가처분 신청을 KBS 밖에 있는 사람은 물론 안에 있는 사람도 낼 수 없는 게 법 현실이라고 한다. 행정 쿠데타에 가담한 KBS 이사들의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고 조만간 모두 교체될 예정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지난 1994년 대한민국 검찰이 12.12 사건과 관련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리며 전두환 노태우씨를 기소하지 않았던 때와 결과적으로 비슷하다.
전두환 노태우씨에 대해서는 다음해 1995년 10월 문민정부에 의해 단죄가 이뤄졌다. 하지만 현재 KBS의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유일한 단죄는 정 전 사장이 KBS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이 기막힌 상황을 보며,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명제가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함께 법치주의의 최대 딜레마를 보여주는 명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주먹'이 동원돼야 한다. 법적으로 직무정지가처분 신청이 불가능하다면, 사장으로서 이병순씨의 생명이 중단됐다는 명징한 선언이 따라야 한다. 해임 결의안에 찬성한 KBS 이사들의 공개사과를 촉구하는 요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KBS 내부 상황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다. 이런 요구를 할 경우 성공한 쿠데타를 방조한 이들에 의해 '친정-반정'이라는 낡은 잣대가 부활해 '정빨'이라는 낙인이 찍힐까봐 전전긍긍 하고 있다고 한다.
YS가 12·12 관련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 검찰에 이렇게 말했다. "성공하고 실패하고를 떠나 쿠데타는 쿠데타"라고 말이다. '성공하고 실패하고를 떠나 정 사장 해임은 'KBS의 관영화, 국영화'를 위한 시발점이었다.' 친정-반정이 아니라,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KBS 구성원이 다수를 이루는 게 상식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