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이 아닌 국가 보조금을 신청해라!
'공영방송 텔레비전 수신료'라는 제도의 자존심을 지키자
2010년 01월 18일 (월) 미디어스 기고
조준상/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
방송이 완벽히 장악됐다. MBC <피디수첩>만 빼고. 그것마저 무릎을 꿇리기 위한 온갖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 군사정권 때 빼고 지금처럼 '초록이 동색'으로 방송의 여론이 획일했던 적이 있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역설적으로, '여론 다양성' 차원에서 종합편성채널 도입이 필요하다고 내세웠던 MB 정권의 논리는 지금이야말로 적실성을 갖는지도 모른다. 정작 필요한 건, '조중동'이 아니라 <한겨레>나 <경향신문> 등이 방송뉴스채널을 운영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의 수신료 인상='조중동' 소유 종합편성채널에 건네는 뇌물 조성
방송이 완벽히 장악된 상황에서, '리틀 MB' 김인규 KBS 새 사장은 수신료 인상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720억원이나 되는 흑자가 발생했음에도, 수신료 인상을 서둘러 추진하는 요상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1월27~28일 제주도에서 이사회를 열어 수신료 인상안을 브리핑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때 KBS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을 심의 의결해 국회로 넘기면, 한나라당은 2월 국회에서 이를 통과시킬 심산인 것처럼 보인다.
언론계 상식세력들은 이런 불도저식 수신료 인상 추진에 대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지를 두고 열띤 논의를 하고 있다. 모두가 동의하는 건, 현재 수신료 인상은 '조중동'이 소유하게 될 종합편성채널의 재원을 마련해 주기 위한 수단의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수신료 인상은, '조중동'이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정권을 위한 '피아노 건반' 노릇을 충실히 해달라는 차원에서 MB 정권이 건네는 사실상의 '뇌물'이나 마찬가지다.
그 '뇌물'이 '조중동'에 돌아가는 메커니즘은 이렇다. 현재 2500원인 수신료가 5천원으로 오르면 5천억원이 더 걷히는 효과가 발생한다. 수신료가 더 걷히면 KBS 2TV의 광고를 줄여야 할 것이다. 광고를 5천억원만큼 줄이면 KBS로서는 생기는 게 없으니, 아마도 4천억원쯤 줄일 것이다. 그러면, 방송통신위원회가 광고주의 팔을 비틀어 KBS 2TV에 하던 광고를 종합편성채널에 하도록 한다는 게 '종편을 위한 수신료 인상'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가계소득 주는 판에 뇌물 조성에 참여하라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2009년 전체 노동자의 임금은 3.1% 하락했다. 그 중에서 임시/일용직의 경우 9.1%나 하락했다. 이런 와중에 준조세에 해당하는 수신료를 2500원 올리는 것은 상식 밖의 짓이다. 납부가 면제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2007년 6월 말 기준 수상기 보유 기준 46만명) 등 200여만명을 제외한다고 해도 그렇다.
국민들은 준조세 부담이 늘어나는 피해만 받는 게 아니다. '뇌물'의 조성에 가담하는 사실상의 범죄자가 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종합편성채널의 재원을 마련해 주는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수신료 인상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KBS 이사회가 이런 식의 수신료 인상을 심의 의결할 경우, 이런 인상을 한나라당이 날치기 강행 통과시킬 경우, 그것은 모든 국민을 뇌물 조성자로 만드는 행위에 해당한다.
현재의 수신료 인상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KBS는 관제 국영방송화해 왔고, 그 농도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수신료는 관제 국영방송의 재원이 아니다. 'KBS 수신료'는 더더욱 아니다. '공영방송 텔레비전 수신료'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국가의 하부기관처럼 행동하지 않으면서 사적 영역도 아닌 '공적 영역'으로서의 공영방송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수신료 인상을 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 역시 없다.
현재의 수신료 인상에 동의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대다수 국민의 실생활에 대한 연민이나 깊은 동정을 찾아볼 수 없는, 상당수 KBS 구성원들의 '천박한' 인식과 행태 때문이다. 언론보도를 보면, 언론노조 밖에 있는 KBS노조와 김인규 사장이 합의해, 2009년 약 720억원에 이르는 흑자 중에서 100억원 가량을 교통비와 체력단련비 등의 명목으로 지난해 12월 말 나눠가지는 한편,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에 1인당 150만~180만원의 상여금을 받았다고 한다. 대다수 국민들의 준조세 부담을 높이겠다는 하는 곳에서 보여야 할 태도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김인규 사장, 수신료 모독 말고 보조금 신청하시오!
▲ 김인규 KBS 사장 ⓒ KBS 홍보실
이런 모든 상황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관제 국영화하고 있는 KBS에서 재원이 더 필요하다면, 보조금을 국가에 신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의 직접적인 부담을 늘릴 뿐만 아니라, '조중동' 소유의 종합편성채널에 제공할 뇌물의 조성자로 국민을 만드는 것보단, 국가에 보조금을 신청하는 방식이 일반 국민의 피해를 줄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행 방송법 제54조 제2항은, KBS가 수행하는 △국제친선 및 이해증진과 문화․경제교류 등을 목적으로 하는 방송 △외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으로 대상으로 민족의 동질성을 증진할 목적으로 하는 방송에 대해 국가가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기준에 들어맞는 KBS의 방송사업은 11개 언어로 세계에 방송되고 있는 '국제방송', 북한 및 북방동포를 위한 '사회교육방송', 위성방송사업에 해당하는 'KBS 코리아' 등 수두룩하다. 이들 방송사업은 지금도 얼마든지 국가에 보조금을 신청해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명분도 충분하다. 이들 방송사업은 라디오 채널 사업이다. '텔레비전 수신료'로 운영돼서는 안 되는 사업이다. 보조금 신청은, 라디오 방송의 재원으로 텔레비전 수신료를 사용하고 있는 그릇된 관행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2009년 720억원에 이르는 흑자 중에서 제작비 삭감을 통해 달성한 부분, 그리고 국가에 신청하는 보조금으로 해결하기 바란다.
물론, KBS의 보조금 신청에 대해서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국민들이 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KBS가 보조금 신청하면 그 부담은 궁극적으로 국민에 돌아온다는 반발도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결국 '정권을 바꿔야 해결될 성질의 사안'이라는 답변으로 대신한다.
수신료 인상은, '공영방송 텔레비전 수신료'라는 원칙에서 접근해야!
하지만 '공영방송 텔레비전 수신료' 인상은 '정권 교체'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이다. 첫째, 수신료는 ‘KBS 수신료’가 아닌 ‘공영방송 수신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신료 산정․심의․의결은 KBS 이사회가 아닌, KBS 외부의, KBS도 이해관계자의 하나로 참여하는, '공영방송임을 주장하는 방송들'과 시민사회(시청자 및 학계 등)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별도의 기구, 이를테면 (가칭)수신료위원회에서 이뤄져야 한다. 또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 확보와 병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은 수신료위원회 구성과 정치적 독립성 보장을 위한 방송법 및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에 나서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수신료는 '텔레비전' 수신료이기 때문이다. 라디오 방송사업이나 기타 방송사업에 쓰여서는 안 되며, 공영방송의 텔레비전 방송사업, 시청자와 관련된 시청자 참여 및 평가 프로그램 제작, 시청자위원회 활동과 운영 등에 사용돼야 한다.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시청자가 알 수 있도록 반드시 '분리회계'가 이뤄져야 하며, 이 원칙은 2010년 KBS가 국가에 보조금을 신청하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부터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셋째, 수신료는 텔레비전 수상기에 부과되는 준조세 성격의 ‘특별 부담금’이라는 측면과 함께, 공영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직접수신 권리가 전제돼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영방송에 대한 직접수신 권리가 제한돼 있는(유료방송을 통해 공영방송을 시청할 수밖에 없는 난시청 지역의 시청자의) 이중 부담 문제를 해소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 그리고 시청자 단체를 포함하는 특별위원회를 지금 당장 구성해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밖에 수신료 인상은 프로그램 제작/편성의 자율성 보장과 프로그램에 대한 다층적 평가 시스템의 마련, 외주제작비의 현실화, 시청자 참여 보장과 퍼블릭 액세스의 전면 확장과 같은 정책들과 맞물려 있는 성질의 문제이다. 충분한 준비와 합의가 선행 또는 병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수신료 인상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의 수순을 밟자. '공영방송 텔레비전 수신료'가 '조중동' 종합편성채널에 제공할 '뇌물'을 제공하는 차원으로 전락되는 것만은 막도록 하자. 이것은 제도의 '자존심' 문제에 해당한다. 그 출발은 KBS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안을 심의․의결하는 것을 멈추고 국가 보조금 신청을 의결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인상 반대'를 넘어 '수신료 자체에 대한 거부'로 치닫게 될지도 모르며, 어떤 후유증을 남길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