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 단식 대행 사랑의 금식 캠페인’에 대한 산책자의 몽상
[전규찬의 도끼질, 대패질]
2010년 05월 06일 (목) 미디어스 기고 전규찬/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
세시 반에 신촌 출발, 북아현동 긴 골목 지나 충정로 근처 참 드문 서울 도심의 철길에 잠시 머물고, 시청 프레스센터 13층 남쪽 화장실에서 용무보고, 그러고 인사동으로 걸음 서두르니 정확하게 다섯시. 1시간 30분에 서울 도심을 걸음으로 질러보았습니다.
땡 빛에 열심히 걸으며 이런 고민, 이런 생각했습니다. 이근행은 단식 풀고 대신에 우리 트위터 둥지 동지들이 돌아가며 한 끼 씩만 금식하자면? 어떠세요? 오월 그렇게 한 인간의 피나는 고통을 조금씩 부담하면서, 서로 손잡고 더욱 힘들 시간을 함께 버팀이?
▲ 이근행 본부장이 4월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본사 현관에서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곽상아
이렇게 어제 저녁에 트위터에 몇 자 썼습니다. “저항의 표식으로서의 단식을 당장 접으시라.” 단식중지를 요청하는 이야기를 다른 분들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멈추면 당신의 맘이 어찌 편하시겠습니까? 그러니 제안하는 겁니다. 내가 시작해 우리가 함께 고통을 대신할 테니, 당신은 빨리 몸을 챙기시라! 그랬더니 누구보다 그대를 아끼는 이 피디가 이렇게 아프게 대꾸하지 뭡니까. “9일째 단식하고 있는 이근행 위원장 앞에서 우리 사회는 너무나 무기력하다. 진짜 MBC를 지원하는 길은 MBC에 와서 MBC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MBC밖에다 MBC문제를 끌어내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꺼이 제 제안에 동참하겠다고 했습니다. 최초의 동참자입니다. 제가 달리 뭐라고 답할 수 있겠습니까?
이 동지의 지적, 이야기 맘이 참 아픕니다. 찡하게 다가옵니다. 엠비씨는 사회를 보호하고, 사회는 엠비씨를 보존하고, 이게 우리가 당신들과 맺은 약속이죠. 이근행은 당장 우리를 위해 몸 챙기고, 우리는 이근행을 위해 몸을 쓰는 작당을 당장 시작합니다.
이근행은 당장 단식을 풀고, 살아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을 대신해 난 내일 아침, 점심 두 끼를 굶어보렵니다. 북한산에 오르며 다시 깊이, 진지하게 생각해 볼랍니다. 언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관여한 현실의 해결을 위한 바로 나의 책임은?
어린이날 아침 침대에서 일단 시간을 뭉갰습니다. 그리고 열시쯤 일어나 대충 세수하고, 배낭 매고 모자 덮어쓰고 온 게 이곳 동네 피시방입니다. 친한 활동가 후배가 다음과 같은 말을 밤사이 트위터에 올려놓았더군요. “너무 무게 겨워 하지마삼. 인력으로는 좀처럼 안 되는 국면을 경과하고 있어요.” 마음 따뜻한 위안, 그러나 샤프한 분석이죠? 이른 아침에 그이는 이근행 위원장에게 당부하는, 이런 진지한 메시지도 남겨두었더라고요. “단식, 삭발, 삼보일배 같은 건 어떻게든 지양해야 하는데 내부를 결속하고 상대에 위협을 준다는 생각에서 선택의 반복. 내부는 단단해졌고 상대는 이런 걸로 눈도 꿈쩍 안 하니 오늘 단식 풀어 어린이날 선물하시길.”
활동가/전략가의 따뜻한 권유, 그렇지만 냉정한 판단입니다. 벤야민이 말한, ‘기다리는 자’가 되어보는 슬기 발휘의 고언입니다. 오랫동안 교육부문을 지도해 온 한 활동가 선배님은 좀 더 나아갑니다. ‘앞으로 20년’의 시간을 맘에 두고 계셨습니다. 참 긴 시간이죠? 말 그대로 그런 긴 게임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매우 어려운 여정의 겨우 초입에 들어선 것뿐입니다. 극단적 카드, 비장한 선택을 택하기에 지금은 너무 이릅니다. 엠비씨만 해도 갈 길이 한 참 남았지 않습니까? 지혜를 달라는 부탁에 다음과 같이 샤프하게 대답한 문화운동 선배 연구자의 리플이 웃기고 인간적이면서 또 한편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 굶고 머리가 돌아가나? 일단 밥부터 챙기길.”
맞습니다. 일단 밥부터 챙겨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열흘 동안 당신은 당신의 결기를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비장하게 계속 보여주지 않아도 됩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장렬하게 전사할 때도 아닙니다. ‘죽음’을 입에 올리지 말고, 목숨을 아끼십시오. 몸을 잘 간수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모두 함께 책임감 있게 준비하고 진지하게 대화하고, 그래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곳저곳 이동하고,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답답하고 갑갑하지만, 섭섭하고 야속하겠지만, 단식 외의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힘 있게 중심을 잡고 당신들 모두의 삶을 잘 챙겨 나가야 합니다. 단식을 푸는 게 옳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들, MBC 식구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요. 우리가 고통의 짊을 분담하겠습니다. 왜 당신 혼자서 곡기를 끊어야 하나요? 엠비씨 파업이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고, MBC 사태가 당신들만의 현안이 아니지 않습니까? 언론자유/방송독립이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현실이라면, 그 지킴이의 고통은 당연하게 분담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그래서 밥부터 챙기라던 그 선배에게는 이렇게 리플했습니다. “쩝,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약속 한대로 점심까지는 굶으려고요, 선배 이근행 단식 그만하라고 한번 날려주세요.” 캠페인에 동참하겠다고 답한 몇 분에게 꾸벅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맨션’을 날리고, 전 산을 올랐습니다.
‘이근행 단식 대행 사랑의 금식 릴레이’ 이어가주세요. 오늘 오후 쯤 전 <미디어스> 칼럼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꼬르륵 거리지만 저는 이제 뒤 북한산 산책 갈려고요. 먹어야 버티겠지만, 둥지 동지의 고통을 그래도 분담하는 사랑의 운동학을 실천함.
PS: 한시 반 쯤 북한산을 올랐는데 다섯 시 반이 넘어 구기동으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배는 고프고, 힘은 딸리고, 그래서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습니다. 배고픔은 물로 때우고, 갈증은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으로 채우면서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그래도 봄날 교미하는 나비의 날개 떨림을 목격하고, 새들의 기찬 혼성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메이데이 때 산 티셔츠의 ‘전태일, 너는 나다’라는 말을 ‘이근행, 나는 너다’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소중한 한 끼는 집근처 기사식당에서 마친 후 동네 피시방에 들러 그 사이 트위터의 메시지를 체크해 봅니다. 밥 챙기라던 문화운동 선배 연구자가 다시 이렇게 ‘맨션’을 날려놨습니다. 이근행 위원장, 한번 들어봐요. 이제 단식을 마치고 같이 답을 만들어 봅시다.
아무 생각 없이 칼국수 한 그릇 먹고 들어왔는데..문득 부끄러움..그래도 난 밥 굶으며 싸우는 건 반대. 눈 하나 깜짝 않는 저 뻔뻔한 집단에게는 좀 더 영악하고 강한 방법이 필요할 텐데..나도 답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