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다시 수신료 인상을 시도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정에 대해, 구체적인 안에 관해서도 이런 저런 소문이 들린다. 미국에 있는 최진봉 교수조차 이달 중순쯤 ‘수신료 현실화’를 위한 2차 공청회가 추진 중이라고 쓸 정도니, 뭐 공공연한 사실인 모양이다. <경향신문> 칼럼에서 최 교수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수신료를 올리겠다는 KBS의 태도에 어이가 없다”고 비판한다. “수신료 인상을 논하기 전에 공영방송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을 먼저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기 전에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KBS가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자진해서 수신료를 올려주고 싶을 정도의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는 제안이다. 말 그대로 반대의 원칙론, 거부의 일반론이다.
노 정권 하 KBS가 수신료 4000원 인상을 추진할 때 본인은 문화연대의 입장에서 5천원 인상안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출한 바 있다. 첫째, 공공적 서비스의 수행성과를 일정하게 평가하여, 수신료 인상에는 원칙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렇지만 공영성 기반을 갖추는 데 실효적이지 못한 4000원 인상안을 시청자들의 눈치를 봐 타협적으로 제출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둘째, 2채널의 광고 비중을 지금보다 크게 낮추면서도 여전히 EBS를 포함하여 공영방송체제 전반의 재정적 안정을 기할 수 있는 두 배(5000원) 인상을 제안했다. 셋째, 바로 이러한 KBS수신료가 아닌 ‘지상파수신료’ 혹은 ‘TV수신료’ 인상의 교환조건으로 경영과 편성을 포괄하는 10대 조건을 내놓았다. 노조가 동의하지 않은 임금삭감에서부터 EBS 할당 비율 인상까지를 포함하는 내용이었다. 접수하지 않아 유감인 안이다.
신자유주의 우파 정권으로 교체되어 꽤 시간이 경과한 상태에서, 그 이전과는 크게 변질된 프로그램 내용을 바탕으로, KBS가 다시 수신료 인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 만큼 인상 관철에 유리한 국면이라고 봤거나, 혹은 더 이상 미루면 안 되니 지금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과연 이러한 판단은 옳은가? KBS는 하늘에서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할 수신료 인상에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대중의 합리적 판단력을 끌어내야 할뿐만 아니라 대중의 일반 정서에도 어필해야 할 것인데, 과연 현 정권 하 KBS는 ‘도덕적 지도력’ 즉 헤게모니를 충분히 갖추었다고 볼 수 있는가? 요컨대 KBS는 보통사람들로부터 대폭 인상안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국가기간방송’ 혹은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시청자들은 KBS가 추진하는 인상(안)에 동의할 것인가?
이미 시민사회의 일부 진영에서는 ‘수신료 거부’라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반발을 보이고 있다. 인상을 허락하기는커녕, 오히려 납부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보지도 않는 KBS, 수신료 내기가 싫다는 주장이다. 이들과 약간의 인식적 차이를 보이면서, 그리고 이후 구사할 전술·전략의 측면에서 일정한 토론의 여지를 남기면서, 진보적 언론·미디어운동 내부에서는 ‘수신료 인상 반대’로 의견을 모으는 흐름도 감지된다. 이에 대해 보수적, 신자유주의적 단체들은 어떠한 입장을 표할지 잘 모르겠다. 변모된 KBS의 이념적 색깔과 서비스 내용이 입맛에 맞으니 인상안에 적극적으로 혹은 자연스럽게 동조하게 될까? 적당한 조건을 내세우면서, 공청회의 형식과정에 참여하고, 그래서 사회적 토론의 구색을 갖춰주면서, 궁극적으로 인상추진에 협조하고 나설 것인가? 아니면 돈 문제에 관해서는 달리 반응할까?
KBS가 바짝 신경 쓰고 있을 동향이다. 그렇다고 대의적 시민사회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현재로서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시청자 대중들이 있다. 인상 추진이 본격화될 때, 이에 관해 사회적 토론이 활성화될 때, 그때 서서히 속내를 드러낼 여론대중을 KBS는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 수신료에 관한 대중여론을 KBS는 어떻게 수렴·반영할 계획인가? 이번에도 자체 ‘여론조사’나 외부 ‘공청회’로 넘기면 될까? 사실 수신료는 KBS만 상관있는 게 아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의 공영방송 구조 전체와 연관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깊어가는 빈곤과 궁핍 속에서 인상액 부담을 직접 짊어 질 보통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명백하게 대중들의 사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적당한 절차와 당략적 계산법을 통해 대충 처리하려면 큰 코 다칠, 생활 정치적인 사안이 바로 수신료 인상(안)이다.
이러한 점에서 KBS는 수신료 인상추진 일정과 인상안 내용을 서둘러 밝히는 게 맞다. 그렇다면 시청자, 학자, 시민사회 활동가로서 본인도 당연하게 입장을 내놓을 것이며, 다른 사람과 조직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절차를 생략하고 졸속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절대 안 될 사안임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본인은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토론을 유도하고, KBS가 이후 내놓을 안에 관해서도 보다 이성적이고 민주적인 공론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우선 세 가지를 먼저 질의한다. 구체적으로, KBS측이 ‘공영방송과 수신료제도’라는 제목으로 홈페이지에 밝혀 놓은 것들에 대해 질문 던진다. 이는 오직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한 사회적 토론을 촉발하기 위한 목적이니, 부디 KBS측이 진지하게 검토하여 책임감 있게 재 답변을 해 주면 고맙겠다.
첫 째, KBS는 공공조달 방식을 통한 재원조달이 바람직하다면서, “만일 공영방송이 상업적 자본에 의존하게 되면 시청률이나 광고주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정부예산에 의존한다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광고가 곧 상업적 자본에의 의존이라는 뜻인가? 시청률 경쟁은 광고가 없으면 자동적으로 없어지나? 정부예산에 의존하지 않으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이 이루어진다는 논리의 근거는 무엇이고,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현재 KBS는 얼마나 자본권력·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있는가? “만일 KBS가 광고수입으로만 운영된다면” “오로지 시청률 경쟁을 통한 광고수입 확대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데 동의할 수 있지만, 부분 광고조차 공영방송의 이념·철학과 모순된다고 볼 수 있는가?
두 번째, 공영방송의 가장 이상적인 재원은 수신료라는 데 동의한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간격이다. 수신료=선, 광고=악의 등식은 현실 (공영)방송 환경에서 반드시 성립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KBS는 “수신료 제도를 통해 모든 시청자는 공영방송의 운영주체가 되어 재원을 균등하게 부담하고, 공영방송은 다양하고 보편적인 방송서비스를 통해 수신료를 납부하는 국민에 대한 공적책임을 수행하게 됩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신료를 내면 모든 시청자가 공영방송의 운영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현재 KBS가 갖추고 있는 시청자 참여제도는 무엇이고, 또 이는 어떻게 강화될 예정인가? KBS가 생각하는 ‘국민에 대한 공적책임’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이는 현재 얼마나 질적으로 수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정책·제도적으로 수행될 것인가?
세 번째, KBS는 텔레비전방송수신료를 운영재원으로 하는 주체를 ‘공영방송’으로 정리하고 있다. KBS수신료가 아니라 ‘텔레비전방송수신료’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수신료는 다름 아닌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 수행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맞는 말이다. 공영방송이 KBS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명백백하다. ‘정명’ 논란이 있지만, MBC와 EBS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KBS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실제 심각한 위험에 처한 KBS가 아닌, (KBS를 비롯한) 한국 공영방송 전반의 공공성·공익성 구현을 위해 어떠한 수신료 활용법·배분법을 갖고 있는가?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여타 공영방송 주체들과 사전에 충분히 토론할 용의가 있는가? KBS가 갖고 있는 공영방송의 미래 비전은 무엇인가? 수신료 인상(안) 공론화의 시발을 위해 묻는 것이며, 질문과 의문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