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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PD수첩의 역사적 숙명
이 름 관리자 등록일 2010-06-22 17:50:19 조회수 2210
[PD수첩 20주년 기획] ① PD수첩 20주년에 부쳐

2010년 06월 22일 (화) 16:17:58  전규찬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  webmaster@mediaus.co.kr  
   
프로그램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텔레비전 시청 대중들의 눈높이와 취향,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주체의 정치적 색깔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보도나 교양 장르의 경우, 취향의 차이에 덧붙인 이념의 구분이 선호도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피디수첩>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제 20년을 맞이하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보기 좋다’, ‘보기 싫다’라는 공감 즉 공통감각(common sense)이라는 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혐오스럽고 불편하겠지만, 또 다른 시청자들에게는 빠트리지 말아야 할 프로그램 혹은 반드시 존재해야 할 프로그램이다. <피디수첩>는 한국사회의 변별점이다.

한 쪽에게는 뽑아냈으면 속 시원할 ‘적출’의 표적이고, 반대편 진영에게는 사회적 안녕의 바리게이트로서 사수의 대상이다. 보수 세력이 봤을 때 <피디수첩>은 체제를 어지럽히는 불량한 프로그램에 불과하고, 진보 진영에게 같은 프로그램은 위기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최후의 보루다. 전자가 <피디수첩>을 공중의 적으로 규정한다면, 후자는 똑 같은 프로그램을 공적 공간의 일부로 평가한다. 이렇듯 <피디수첩>만큼 호불호가 이념 선을 따라 명확히 구분되는 TV 프로그램도 없을 것이다. 요컨대 <피디수첩>은 사회적 적대, 이념적 모순의 선상에 정확히 위치한다. 그래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특이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를 모토로 한 스무 살 <피디수첩>의 무엇보다 큰 미덕은 바로 그 ‘정치적’인 성질에 있다. 폭력과 비리, 부정이 난무한 지난 20년 한국사회를 정직한 눈, 냉정한 시선에서 응시코자 한 정치적 태도에 있다. 그러다 보니 국가폭력과 권력비리, 사회부정과 자연스럽게 충돌하게 된다. 그렇게 <피디수첩>은 한국사회의 후(미)진 면모를 투명하게 드러냄으로써 대중 자각, 시청자 공분, 시민 여론을 강력하게 불러일으켰다.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고, 정치과정을 촉발하며, 시민여론을 대의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공적 임무를 나름대로 성실히 수행해 왔다.

권력비판과 사회감시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저널리즘의 역할을 짊어진 이유로 사회적 갈등, 정파적 충돌의 지점이 된 것이다. 즉, <피디수첩>은 권력견제와 민주보호라는 매우 당연한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에 문제아로 취급당한다. 황우석의 절대 신화를 해체시키고자 하고, ‘스폰서 검사’들의 현주소를 그대로 노출하며,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짚어보고자 함으로써 ‘정치적’이게 되었다. 그래서 불온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위험한 프로그램이 된다. 저널리즘의 기본을 고수함으로써 ‘정치적인 것’이 된 게 <피디수첩>의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도주론』으로 유명한 아사다 아키라의 표현대로라면, “숙명이라는 것은 A도 B도 또는 C일 수도 있었는데 웬일인지 다름 아닌 A라는 상대적인 사실의 절대성”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성과 사회성에 대한 인식을 포함하는 게 바로 숙명이다. <피디수첩>도 20년의 궤적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어떠하고 또 어떠해야 하는지를 인식하고, 동시에 여타 프로그램들과는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를 나름대로 선택해 왔다. 같은 방송사의 <2580>이 아니고 타 방송사의 <추석 60분>이 아닌, ‘다름 아닌’ <피디수첩>이라는 상대적 정체성을 고수해 왔다. 현실 관여적, 권력 적대적 프로그램의 숙명을 택한 것이다.  

이런 대의적 숙명이라면, 시대를 정직하게 목격코자 한 단순 발상으로 인해 자초한 것일지라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게 맞다. 그리고 실제로 <피디수첩>은 그 숙명을 20년 동안 훌륭하게 받아들여 왔다. 그래서 함께 고통을 맞본 시청자, 더불어 고난을 겪는 대중들로부터 커다란 신뢰, 무한한 애정을 얻게 된 것이다. <피디수첩>에 대한 지금의 열화 같은 성원은 이 프로그램이 숙명으로 짊어지게 된 상식적=정치적=민주적 역할에 대한 긍정적 승인이자 적극적 평가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대한 가히 살해적인 적의는 바로 이 숙명을 <피디수첩>이라는 존재로부터 박탈하는 데 맞춰져있다.  

<피디수첩>을 둘러싼 지금까지의 지난한 쟁투는 <피디수첩>에 기입된 역사적 숙명, 정치적 숙명을 둘러싼 싸움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치열했던 것이며, 앞으로도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의 결과가 어떠한지에 따라, 한국 사회의 운명과 한국 민주주의의 양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피디수첩>과 한국사회는 여론대의의 공적 기제들이 크게 무력화한 신보수/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민주주의와 앞뒤 가릴 수 없는 양면의 관계를 이룬다. 순망치한의 상보적 의존성을 갖는다. 사회가 <피디수첩>의 보호에 나서고, 후자가 전자의 보존에 임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과연 <피디수첩>은 앞으로 20년을 버텨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 같은 모습, 지금의 숙명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최소한 지난 10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배치, 권력의 메커니즘, 권력의 운동이 더 이상 과거의 모습 그대로이지 않다. 공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체제, 공적인 자원을 탈취코자 하는 질서가 이미 도래했다.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앞으로 꽤 오랜 시간 지속될 패러다임이다. <피디수첩>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현실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피디수첩>의 숙명이 더욱 중요해지고 또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정황이기도 하다.

<피디수첩>은 자신에게 부여된 역사의 길을 뚜벅뚜벅 외롭게 걸어갈 것인가? 그래서 사회 보호의 명예로운 역할을 지속할 것인가? 물론 호혜적 관계가 여전히 필수적이다. 한국사회의 미래가 일정하게 <피디수첩>에 의존하는 것처럼, <피디수첩>의 앞길 또한 시청자 대중들의 지원에 크게 달려있다. 권력의 무력화 시도가 더욱 노골화되는 처지에서, 상호협력의 계약은 필수적이다. 살해 의사를 천명한 권력에 맞서고 거꾸로 권력을 규제하기 위한 소수자끼리의 협약 체결이다. 물론 제작자, 저널리스트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힘들 것이다. ‘정치적’이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다. 피하고 싶은 부담일 수 있다.

문제는 역사의 명령을 아무도 피해갈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미 사회적으로 부여되고 역사적으로 장치된 정치성은 의식적으로 기피할 수 있는 것, 이기적으로 면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피디수첩>은 이미 사회적인 것이다. 방송사 내부 제작자들의 것이 아닌, 우리 공통의 것이다.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회적 자산이자 정치적 기관이 바로 <피디수첩>이다. 그 성격 변환, 형질 변경은 일개 사장이 감히 할 수 없고, 정권이 강제할 수 없으며, 제작진들조차 함부로 택할 수 없다. 오직 역사와 사회, 시민과 대중들만이 <피디수첩>의 숙명을 지정하고 결정할 수 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87년 체제라는 매우 아슬아슬한 제도 민주주의, 너무나 허술한 형식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도 버텨온 우리다. 고집스러운 저항, 끈질긴 적대의 실천으로 권력의 선을 뚫고 살아남은 우리다. <피디수첩>은 바로 그런 우리(와)의 공통운명체다. 그러하니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시간을 기억하고, 앞으로 또 함께 할 시간을 기약하자. 우리는 당신들을 축하하고, 당신들은 거꾸로 우리에게 감사하라. 가끔 틈새가 생기고 소원해지더라도, 원망과 의심이 생기더라도, 민주/정치의 핵심 주체인 우리들 사이의 기본 신뢰는 무너뜨리지 말자. 그래서 더욱 힘들어질 시간을 버텨가야 한다. 정의로운 현실을 미리 이끌어내면서.

<피디수첩>의 멋진 저널리스트/프로듀서들을 기억한다. 현실을 미리 끌어낸 말 그대로의 선수들이다. 권력의 동향에 반하는 정직함, 권력의 의사를 거슬리는 진실의 추적 노력, 권력을 불편하게 만드는 진실의 고발 자세를 고수해 온 그대들에게 감히 ‘동지’와 ‘동무’라는 이름으로 존경을 표한다. 당신들은 어떻게 할 텐가? 당신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낸 나, 그리고 시청자 대중 모두에게 책도 아니고, 토론회도 아닌, 오직 프로그램으로만 감사를 표하라. 당신들을 지켜온 수많은 대중에게 고개를 숙이라. 비판을 아끼면서 성원해 온 시민들 앞에서 늘 겸손하라. 망각하지 말라. ‘빛나는 저널리즘의 별’이라는 영광을 가져다 준 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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