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뱉고 싶은 계륵, 종편
반대여론에도 종편 밀어붙인 정병국 국회 문방위원장
정부가 지상파 장악하자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로 비하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언론연대사무총장
-한겨레21 제817호 기고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을 수도, 패가망신할 수도 있을 만큼 세 치 혀의 놀림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래도 한나라당 의원인 정병국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최근 쏟아낸 종합편성채널(종편)에 대한 말들은 패가망신은 아니라 해도 본전을 건지지도 못하는 쪽에 가깝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단 논리
▲ 한나라당 미디어특위 위원장을 지낸 정병국 국회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 ⓒ여의도통신
그는 지난 6월17일 국회방송 인터뷰를 포함한 여러 자리에서 “기본적으로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에 관해서는 좀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방송 트렌드 변화의 방향을 보면 (종편은) 구시대의 케이블TV 시대에서나 있었던 부분인데,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종편을 하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드라마·보도·교양·쇼도 제작을 하는 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도전문채널에 대해서도 “지금은 인터넷 뉴스가 굉장히 성행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별도로 보도채널을 확대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이런 발언의 배경에 언론들이 촉각을 곤두세운 건 물론이다. ‘현 정권이 추구해온 언론 정책의 출구전략 아니냐’는 호기심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언론 ‘정책’이라고 할 내용이 현 정권에 있기나 했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지상파 방송을 장악하고 나니 지독한 계륵이 된 종합편성채널.’ 정 위원장의 면피성 발언의 배경은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심경이 달라졌음을 이렇게 표현했다는 얘기다.
그렇게 치면,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까지 나서서 ‘방송 진출을 위해 기꺼이 정권의 노예를 자처하고 있다’고 멸시한 조·중·동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아무리 선의로 이해한다 해도 그의 발언은 ‘출구전략’이 아니라 ‘정략의 파산선고’임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 개인에게도 치명적이다. ‘지독히 기억력이 안 좋은 정치인’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2008년 12월3일 한나라당은 조·중·동과 재벌 대기업에 종편을 주기 위해 방송법 개정안을 포함해 7개 ‘언론장악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한나라당 미디어산업발전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던 정병국 의원은 “IPTV 시대를 맞아 지상파나 보도전문 채널에 크게 메리트가 없고, 장벽의 의미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벽이 미디어 산업 전반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 측면이 있다”며 대기업과 신문의 방송뉴스 채널 소유를 전면 허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덧붙였다. “지금은 지상파 방송 중심으로 여론 독과점이 돼 있다. 대기업과 신문의 방송(뉴스채널) 허용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나라당이 그동안 조·중·동과 재벌 대기업의 방송뉴스 채널 소유를 밀어붙이면서 내세웠던 논리는 △사양화 길을 걷고 있는 신문산업의 성장동력 확보 △글로벌 미디어그룹의 육성 △방송산업에서 지상파 독과점 해소 및 경쟁체제 도입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정 의원의 주장은 지상파 독과점 해소, 특히 지상파 ‘여론’ 독과점 해소에 해당했다. 혹자들처럼 지상파의 우수한 콘텐츠 경쟁력에 난데없이 삿대질을 한 게 아니라, 지상파의 ‘여론’ 독과점을 문제 삼는 논리 구조를 갖췄던 것이다. 당시 방송법에서도 보도 기능까지 주지는 않아도 재벌 대기업이 얼마든지 콘텐츠 산업에 뛰어들 수 있게 보장돼 있던 터였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정 의원은 조·중·동과 재벌 대기업에 방송‘뉴스’채널을 소유하도록 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면서 지상파 ‘여론’ 독과점 해소를 명분으로 내건 것이다. 당시 언론장악 법안을 밀어붙이는 총대를 멨던 한나라당 의원치고는 논리적 일관성만큼은 그런대로 유지한 게 바로 그였던 것이다.
▲ 미디어법 표결처리가 이뤄진 국회 본회의장 모습 ⓒ안현우
여론 독점 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어디갔나
그런데 최근 쏟아진 그의 발언 내용에선 이른바 ‘여론’이란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방송 트렌드 변화를 감안할 때 종합편성채널은 구시대의 산물’이라는 게 그가 종편에 부정적인 논리의 전부다. 그걸 2008년 12월에는 몰랐고 1년6개월여가 흐른 지금에야 깨달았다는 투다. 케이블 텔레비전의 전문채널들 하나하나가 모여 ‘종합편성채널’을 이루는, 그래서 케이블 텔레비전 자체가 ‘종합편성채널’을 구성한다는 상식을 깼던 사람이 바로 정 의원 자신이자 한나라당이었는데도 말이다.
뒤늦게 깨달았다고 우기고 있다고 치자. 그러면 지상파 ‘여론’ 독과점 논리는 도대체 어디로 실종된 것인가? 2008년 12월과 2010년 6월 두 시점에서 지상파 ‘여론’ 독과점은 해소됐다는 말인가?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는 현 정권이 지상파 방송 전체를 장악하지 못한 때였고, 지금은 모두 장악해 ‘관제방송화’했다는 것뿐이다. 정말로 지상파 여론 독과점이 문제라면, 지금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있다고 해야 정직하다. 그때야 지상파 방송이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어느 정도라도 유지하는 다양성을 보였다면, 지금은 ‘초록이 동색’인 정도가 극심해진데다 동색을 이루는 초록이 조·중·동의 색깔과 아주 가깝기 때문이다. 지상파 여론 독과점 해소, 나아가 한국 사회 여론 독과점 해소를 위해선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에 <한겨레>나 <경향신문>, <프레시안>이나 <오마이뉴스> 같은 매체들이 진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본전도 건지지 못하는 정 의원의 면피성 발언의 본색은 “이제는 어차피 종합편성채널을 하기로 했다면 그건 준칙주의 쪽에서 풀어주면 된다”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특혜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자격 요건을 갖춘 사업자에게 모두 종편을 허용하는 준칙주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자신의 이런 준칙주의 논리에 동의하고 있다는 뉘앙스까지 내비쳤다. ‘난 부정적인데 상황이 여기까지 와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니 준칙주의로 풀자’는 것이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자빠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말하는 준칙주의, 이게 무슨 뜻인지 정 의원이 알고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건 ‘등록제’를 말하는 것이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사업자는 모두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록제 말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서서 승인이나 허가하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선 방송법을 바꿔서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의 승인제를 등록제로 변경해야 한다. 등록제로 변경하면, 종합편성채널에 주고 있는 의무송신(편성)의 특혜도 당연히 없애야 한다. 한국방송 1텔레비전이나 교육방송에만 적용하고 있는 의무송신 제도를 종편이 누리는 것은 지나친 특혜이며, 지상파 방송과의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계속돼온 터였다.
준칙주의와 현행 방송법은 양립 불가능
아마도 정 의원은 ‘등록제가 아닌 준칙주의도 가능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정 의원 생각일 뿐이다. 준칙주의는 등록제다.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등록제 요건은, 한나라당이 말해온 것처럼 우수한 콘텐츠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지상파방송과 제대로 경쟁을 하며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 자본금 규모 면에 이 준칙은 최소 1조원은 돼야 할 것이다. 그렇게 준칙을 마련하고, 지난해 7월 한나라당이 난리법석을 피워가며 개정한 방송법을 개정해 승인제를 등록제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게 정 의원이 할 일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병국 의원과 언론장악입법에 총대 멨던 한나라당 다른 의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비아냥과 조롱이 쏟아질 것이다. ‘당신들은 파산했어! 논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두 측면에서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