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진의 ‘연예가중재’]KBS ‘천무단’ 폐지, ‘74434’의 반복이 아니길
2010년 12월 09일 (목) 15:06:48 김형진 / 공공미디어연구소 교육팀장 mediaus@mediaus.co.kr
오늘하루 이창을 열지 않음KBS 2TV 토요일 저녁 예능프로그램인 ‘천하무적야구단’이 내년 1월 개편에서 폐지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시청률 부진’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자, KBS 관계자 혹은 예능국에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일례로 <뉴스엔>에 따르면 KBS 전진국 예능국장이 ‘천무단’의 폐지 이유를 "시청률 부진의 문제라기보다 KBS가 수신료 현실화와 관련해 공영성을 강화하기 위한 편성전략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니, KBS 수신료의 불똥이 ‘천무단’ 앞에 떨어진 꼴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신설할 때, ‘상업성의 강화’ ‘시청률의 상승’ 따위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없다. 이건 방송사, 특히 지상파방송의 최소한의 미덕이다. 개편 때만 되면 방송사들은 앵무새처럼 ‘공영성 강화’를 떠들어댄다. 그래서 ‘천무단’은 수신료 현실화와 공영방송의 책임을 위해 ‘희생’ 당한 것이라 말할 수도 있다. 후속으로 거론되고 있는 군필 연예인들이 진행하는 버라이어티 ‘명 받았습니다(가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공영성 강화’에 기여할지는 모르겠지만, 포맷으로는 확실한 ‘예능’이라는 점에서 구두선(口頭禪)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천무단’ 폐지 소식에 게시판에는 폐지 반대의 글이 간간히 올라오고 있다. 다음 아고라에는 ‘천무야 폐지시 KBS시청거부’라는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그리 폭발적이지는 못하지만. 프로그램의 신설과 폐지라는 고유한 권한을 가진 방송사를 상대로 지적질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천무단’ 폐지 소식에 마음이 쏠리는 곳은 다름 아닌 ‘꿈의 구장’이다.
천무단은 사라지고, ‘꿈의 구장’만이 남을 수 있을까?
꿈의 구장은 사회인 야구를 위한 프로젝트로 기공식을 가졌다. 천무단은 그동안 꿈의 구장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캠페인은 물론, 기부행사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왔다. 라면 광고에 천무단 출연자이자 선수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천무단 방영 이후 사회인 야구단의 수가 급증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실제 천무단이 사회인 야구 활성화에 불을 지폈다. 물론 사회인 야구 인프라는 여전히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꿈의 구장’이라는 타이틀이 많은 사회인 야구인들의 주머니를 열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다보니 천무단 폐지에 걱정을 앞세우는 이들이 많다. 물론 거세게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꿈의 구장’이다. 과연 꿈의 구장이 건립될 수 있을지? 내가 기부한 돈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한 의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연예뉴스들도 앞다투어 ‘꿈의 구장’의 미래를 점쳤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뉴스로 봐서는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뉴스엔>에 따르면 ‘천무단’ 최재형PD는 12월 8일 뉴스엔과 통화에서 “폐지가 돼도 꿈의 구장 건립 과정은 추후 공개될 수 있을 것이다”며 “완공된 후에는 다시 ‘천무단’ 멤버들이 뭉쳐 스페셜 방송을 추진할 예정이다”고 밝혔다고 하니, 아직은 믿어볼 여지는 남은 셈이다.
74434의 폐지와 외규장각 반환운동의 예
혹시 ‘위대한 유산 74434’를 기억하는가? <느낌표>의 한 꼭지로 2005년 봄에 시작하여 1년 이상 방송되다가 막을 내린 코너다. 문화유산을 재조명하고, 유출 문화재를 환수하는 프로젝트로 시작한 ‘74434’는 방송되는 동안 일제시대 강탈당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반환해오는 운동에 동참했고,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공신교서를 일본에서 환수해 오는 데 성공하기도 하였다. 또한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기 위한 시민모금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런 와중에 코너가 폐지되었다. 시청률 저조로 인해 <느낌표> 전체가 폐지 위기에 몰렸으나, 프로그램을 개편하는 것이 일단락 지어진 2007년 당시 개편에서 ‘74434’는 폐지되었다. 그리고 진행 중이던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은 당시 캠페인의 파트너였던 시민단체의 몫으로 고스란히 넘어갔다. 시민모금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지만, MBC에서는 코너 폐지와 함께 그렇게 손을 놓았다. MBC 내의 담당자가 사라지면서 모금통장이 사라져버리기도 했지만, 당시 캠페인을 진행했던 문화연대는 지금까지도 콘서트와 행사, 그리고 시민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2007년 당시 MBC가 시청자들과 했던 외규장각 반환을 실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당시 문화연대가 파트너였다면, 문화연대도 그 책임을 충분히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당시 MBC는 코너를 폐지하였고, 그 이후 외규장각 반환 운동에 대해서 개입하지 않았다.
미디어의 책무다. 프로그램 신설과 폐지가 오락이건, 교양이건, 드라마건 방송사의 철학에 의해 변동될 수 있다고 믿어도, 행여 지상파방송이라고 아니 공영방송이라 한다면 ‘책무’ 정도는 지켜야 한다는 소리다. 분명 ‘74434’는 그러지 못했다. 시청자들을 향해 문화재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그것도 모자라 환수운동까지 펼치던 그들이 ‘시청률’의 노예로 전락하여 결국 코너가 폐지되던 날, 어떻게 외규장각 반환운동을 싹 다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오히려 시민단체와 시청자들이 나서서 운동의 끈을 이어나가고 있다.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무성의한 미디어
천무단의 폐지는 ‘74434’의 트라우마 속에서 읽혀진다. 그래서 ‘공영방송의 강화’와 ‘수신료’를 운운하여 굳이 ‘천무단’을 폐지하는 KBS의 꼼수에 신뢰를 줄 수는 없다. 더욱이 ‘꿈의 구장’이라는 프로젝트를 실현하겠다며 호언장담했던 이들이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그 순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주체는 흐리멍텅해진다. 제작진은 꿈의 구장이 완공되면 스페셜 방송을 하겠다고 했지만, 보다 구체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꿈의 구장 건립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결국에는 돌려 돌아 여기까지 왔지만, 프로그램 개편에 ‘시청률’ 잣대가 시청자들에게, 그리고 미디어에게 주는 손해는 막대하다. 순간 눈에 보이는 시청률과 그에 의한 광고로는 보상받지 못할 메시지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미디어의 태도는 무성의 그 자체다. 어쩌면 천무단의 폐지가 부메랑이 되어 KBS에 돌아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