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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종편에 대해 말하지 않는 몇가지 : 종편의 외주제작 청사진에 감춰진...
이 름 김동원 등록일 2011-02-21 13:36:54 조회수 5915
종편에 대해 말하지 않는 몇 가지
: 종편의 외주제작 청사진에 감춰진 비밀

김동원(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당신들이 왜 노동자인가?”
한 10년 전으로 기억된다. 마산 MBC에서 일하던 작가, 리포터, MC, DJ들이 ‘노동자’인가 아닌가를 놓고 행정심판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사측에게 고용계약서를 쓰고, 낮은 고료를 인상해 달라는 것 등이었다. 이를 위해 노조가 만들어졌고 사측과 교섭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너희들이 왜 노동자냐?” 몇 년 후 한 지상파 방송국에서 파견근무하던 조연출 한명이 밤샘 작업 중 과로사로 세상을 달리했고, 2008년에는 작가생활을 시작한지 7개월 된 막내작가가 방송국 사옥 옥상에서 목숨을 던졌다. 언듯 생각난 일들이다. 아마도 더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또 기억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친척들에게, 처음 보는 이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PD, 작가, VJ라는 이름으로 다가가 “재밌는 일을 하시네요”라는 말을 듣는 이들. 그럼에도 어떤 통계에도, 심지어 방송표준제작서의 인건비 명세서에도 잡히지 않는 이들이 있다. 어쩌다 위 사건들처럼 불현듯 눈길을 끄는 일이 있어도, 마치 유령처럼 사라졌다가 새로운 충격으로 또 다시 나타나는 이들. 그런 이유로 이들을 어떻게 불러야할지 조차 정리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들을 방송∙영상 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라 부른다. 얼마 전 종편채널들의 전망에 대한 보고서 한편을 마쳤을 때, 내 머리 속에는 그런 충격적 사건이 없었음에도 이들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었건만, 종편 4개사들의 장밋빛 외주계획들을 훝어보면서 2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새로움을 가장한 오래된 기억들. 그래서 조금은 긴 얘기가 될 것 같다.

정치적 입장의 외로움
2009년 KBS 정연주 사장의 퇴진을 둘러싸고 투쟁이 한창일 당시, 당시로선 거의 유일하게 발언권을 갖고 있던 독립PD들의 모임인 독립PD협회의 지지성명을 놓고 논란(?)이 오갔다. 그 발단은 당시 동아일보의 한 칼럼에서 “방송귀족 vs. 서민영상세대”라는 대립각이 등장하면서 부터였다(동아일보 2009년 1월 9일자). 모두가 알지만 말하지 않던 이야기, 그러니까 독립PD들을 비롯한 비정규직 방송 노동자들은 숙련된 실력에도 불구하고 공채가 되지 못한 서민들이며, 이들은 자신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지상파 공채 PD라는 귀족들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 까닭에 독립PD협회의 KBS 지지성명은 그들의 “노예근성”을 드러내 준 “경제적 영역을 넘어 정신의 영역까지 파고든 외주 장악”의 결과라는 것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지상파 방송사들이 독립PD들을 비롯한 비정규 방송노동자들에게 영원한 ‘갑’인 것은 사실이었으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독립PD들의 지지성명이나 다른 비정규직들의 동참을 정연주 전 사장이나 KBS노조만을 향한 지지라고 볼 수는 없었다. 정권의 치졸한 방송장악이 이후 비정규직들의 처우와 제작환경을 악화시킬지언정 눈꼽만큼이라도 나아질 수는 없으리라는 판단이 그들의 ‘배후세력’이라 해야 옳았다.
그럼에도 점거나 출근저지와 같은 물리적 행동도 아닌 성명서 한 장이 가져온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협회의 설립은 커녕 처우를 묻는 설문조사 하나에도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독립PD들과 비정규직들은 정권과 노조의 대결에서 그 어떤 정치적 입장을 밝힐지라도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 동아일보의 칼럼 하나만으로 그런 외로움이 생기진 않았지만, 이 해프닝은 정치적 입장의 표명이란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힘겨운 것임을 알려준 사건임은 분명했다. 작년 여름 KBS가 최장기 파업으로 새노조의 깃발을 들었을 때, 독립PD협회는 물론 그 어떤 비정규직 방송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제작에 대체 투입된 독립PD들에게 방송파행의 책임이 돌아가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터졌다(PD저널 2010년 7월 19일자). 몇몇 독립PD들의 항의로 당시의 파행이 CP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이제는 표면적인 “중립” 지대에만 서 있어도 또 다시 “외주PD = 수준미달”이라는 그 오래된 딱지를 다시 감당해야 할 지경에 놓이게 된 셈이다.

결코 정치적이지 않은 외주제작?
방송 비정규직들의 이러한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이들의 “중립”이란 스스로의 정치적 지향으로 택한 것이 아닌 생계의 문제, 곧 경제적 조건(불안정 고용)에서 파생된 강요된 선택이라는 점이다. 생계 문제를 앞에 두고 침묵과 발언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은 결코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부자유가 생계를 위한 강요된 선택을 넘어 스스로의 선택으로 내면화될 때 벌어진다.
KBS에는 방송 비정규직들이 심정적 지지라도 보낼 수 있었던 정규직 노조의 저항이라도 있었다면, 이번에 선정된 종편 4사는 아예 그런 과정조차 기대할 수 없는, 그래서 이병기 심사위원장의 말대로 “집단지성(정확히 말해 집단사고!)이 낳은 최선의 결과”이다. 조중동과 매경이 지난 15년의 케이블방송사를 조금이라도 학습했다면 1995년 PP설립 초창기와 같이 대형 스튜디오를 짓고 거의 모든 PD와 기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과잉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실현가능성은 차지하더라도 종편4사의 외주제작 계획은 지상파에 비한다면 가히 ‘축복’에 가깝다. 중앙일보는 연간 1,500억을 외주제작에 투입하고 60억을 지원하며(외주비율 60%), 방송인력 양성에 5년 간 500억을 투자하겠단다. 조선은 5년간 외주업체에 5,400억 가량을 투자하고 1,000억 규모의 콘텐츠 투자조합을 만들 예정이다. 이미 내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종편 쪽에서 얼마에 오라는 제안이 왔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사정이 이러한데, 조선일보라면 쳐다보지도 않던 독립PD가 딸린 동료들의 생계를 위해 그나마 몇 푼 더 주겠다는 종편의 외주 입찰에 뛰어들지 말라는 보장은 없고 그러한 선택에 “변절자”라는 비난을 퍼부을 수도 없다.
결국 종편4사는 지난 세월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방송․영상산업의 비정규직들과 독립제작사들을 지상파 못지않게 최대한 활용할 또 다른 ‘갑’이 될 것이다. 이런 형국에서 비정규직들이 지난 시기 표면적으로, 때로는 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정치적 중립”은 더욱 강화될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이들은 종편 4사의 외주 제작이 왜 정치적 문제인지 묻고, 종편은 종편대로 대한민국 창의산업 육성의 선봉에 선 자신들의 치적을 자화자찬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간다면 지상파에 버금가는 종편의 출현이 지금 현재 지상파 방송노조에 버금가는 또 다른 노조의 결성을 낳게 될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다. ‘공정보도’를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종편들의 약속에선 노조와 함께 하는 ‘공정방송위원회’나 ‘국장책임제’와 같은 지상파 노조에 준할 단체협약은 꿈도 꿀 수 없다. 무노조 경영을 철칙으로 하는 방송계의 ‘삼성’이 등장할지 누가 알겠는가? 60%의 외주제작비율이 적어도 내게는 60%의 비정규직 착취로 읽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종편의 아킬레스는 어디인가?
말이 나온 김에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자. 종편들이 높은 외주제작비율을 내세우는 것은 경쟁을 통한 양질의 콘텐츠 확보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영원한 ‘을’인 외주업체의 다루기 쉬운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대기하고 있기 때문인가? 종편이 제시하는 외주제작 계획이란 지상파 정규직 노조와 같은 다루기 힘든 노동자들을 회피하고, 언제라도 경쟁을 빌미로 쳐낼 수 있는 유연한 노동력에 그들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고백의 다른 표현이다. 한 두 개만 선정되었어도 그 생존이 의심되는 한국의 방송시장에서, 4개라는 종편의 숫자는 그 자체로 외주제작과 비정규직을 활용한 고도의 노동착취를 행해야만 한다는 자본의 명령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현재 종편에서 정규직으로 채용하는(할) 간부직들의 대다수는 이미 지상파에서 오랫동안 그런 노동자들의 활용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이들이 될 수 밖에 없다. 달리 말해 케이블TV의 출범 이후 위성과 DMB, 그리고 IPTV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뉴미디어의 열풍이 가려온 거대한 방송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형성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종편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난날 지상파 방송 노조의 귀족성과 비정규직들의 종속성이란 아킬레스건을 끊임없이 건드리며 자신들의 진정성을 부르짖어 왔다. 정작 그 분열의 결과를 이젠 자신들이 누리면서 말이다.
선정 직후 사실상 종편 4사 간 경쟁이 시작되자 알 수 없는 미래를 앞에 둔 그들은 독립PD들과 수많은 비정규직들에게 ‘독점적’ 지상파의 횡포를 들먹거리며 콘텐츠 진흥이라는 청사진을 흔들어 대고 있다. 솔직해 지자. 조중동, 그리고 매경은 답하라. 방송사업계획서에 적어 놓은 그 장밋빛 콘텐츠 육성 계획이 그들을 위한 것인가 당신들을 위한 것인가? 진정으로 영상 ‘콘텐츠’가 아닌 영상 ‘노동자’들을 위할 수 있겠는가? 자, 이제 당신들에게도 충분한 배려와 상생이 가능한 종편이라는 장이 생겼다. 당신들이 애기했던 “서민영상세대”와 한국방송산업의 숨은 일꾼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 방송의 공적 책임, 공공성, 공익성을 아무리 얘기한다고 해도 당신들이 ‘자본’임은 변함이 없다. 150여 년 전 마르크스가 자본의 비밀은 바로 노동력 상품에 있음을 드러내며 한 말을 빌어온다.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2011년 1월 28일 미디어스 칼럼>
원문 :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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