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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자본의 침투에 대항한 C&M 노동자 연대 요구에 화답해야
이 름 관리자 등록일 2012-05-02 11:11:29 조회수 3442
- 자본의 투쟁, 방송법 시행령 개정
김동원(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1팀장)  

“투쟁”이란 말은 노동자들의 집회나 시위만을 떠올리게 하지만, 자본 역시 그러한 투쟁을 벌인다. 우리가 ‘투쟁하는 자본’을 쉽게 떠올리기 힘든 까닭은 노동의 투쟁이 노조와 같은 인격체가 벌이는 공개적이고 물리적인 싸움이라는 외양을 갖는 반면, 자본의 투쟁은 그런 인격체가 아닌 법과 제도라는 형태로 나타나며 설령 인격체의 외양을 갖더라도 자신이 아닌 “공권력”이라는 대리인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뜨(R. Barthes)가 언제나 자신의 이름을 지우는(ex-nomination) 담론이라는 부르주아 신화(myth)의 특징을 짚어낸 것도 바로 이런 자본의 투쟁 형태 때문일 것이다.

자본의 이름을 감춘 시행령 개정안

오는 5월 4일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정될 예정인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하 개정안)은 바로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숨긴 자본의 투쟁 방식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가 되는 개정안의 조항을 짚어 보라면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첫째, 티브로드, CJ 헬로비전과 같은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소유 규제 한도를 현재의 권역별/SO 가입가구별 기준(77개 권역 중 25개 이하/전체 SO 가입가구 3분의 1)에서 권역별 기준을 삭제하고 가입가구별 기준도 위성방송, IPTV 가입가구들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 유료방송 가입가구의 3분의 1로 대폭 완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둘째, 현재 규제되고 있는 SO 및 위성방송사업자와 PP(채널사용사업자) 간의 겸영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겠다는 무제한의 수직결합 허용이다. 셋째, 특정 PP 매출액의 총액 제한을 전체 PP 매출액의 33%에서 49%로 늘리는 규제 완화이다.

방통위는 이러한 대대적인 규제완화가 다른 방송 플랫폼과의 규제형평성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지만, 지금의 유료방송시장 내 경쟁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소유 규제 한도의 대폭 완화는 현재 8개에서 많게는 21개까지의 SO들을 소유한 MSO 간의 대규모 인수합병 허용과 다름없다. 특정 PP 매출액의 총액 제한을 완화한 것 또한 33%라는 규제선에 턱걸이를 하고 있는 “특정” MPP의 밀어주기에 다름 아니다. 이어서 SO와 PP의 겸영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겠다는 것은 앞의 두 조항을 통해 규제가 완화된 SO업계와 PP업계 모두를 아우르는 절대 강자의 출현을 준비하기 위한 완결판이다. 이렇게 출현할 절대 강자가 누군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MSO에서는 19개의 SO를 보유한 CJ 헬로비전, MPP에서는 31개 TV채널을 소유한 CJ E&M의 모기업인 CJ가 바로 그 당사자다.

한국 방송 자본화의 잔혹사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다. “유료”방송사업자가 이윤을 내려는 것은 당연하고, 그 이윤을 통해 더 나은 콘텐츠를 제작, 배급한다면 시청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 말이다. 백번 양보해서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적 사업자가 이익의 일부를 독립영화와 같은 콘텐츠의 다양화를 위해 투자한다고 해도, 이는 우리가 그토록 속아왔던 성장의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독립영화 한편이 극장 CGV에 어렵사리 걸려도 배정받는 상영관은 들쭉날쭉하기 일쑤인 반면, 고액을 지불하고 수입하는 속편 개봉작을 위해서는 영화채널들에서 그 전편을 연속으로 재방, 삼방하는 노골적인 광고활동을 서슴지 않는다. 결국 콘텐츠 다양화란 기업 전반에 걸쳐 충분한 이윤을 보장받으리라는 기대가 있을 경우에만 시도되는 “시혜”에 가까운 사업부문일 뿐이다.

유료방송시장이 오직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가치사슬로 묶일 때, 이는 단지 콘텐츠만의 문제가 될 수는 없다. 2000년 전후 IMF 모범생이 되기 위해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각종 규제 완화와 신산업 성장동력의 육성에서 미디어 산업은 빠질 수 없었다. 특히 케이블 사업자들을 위한 대대적인 규제완화는 지금의 유료방송시장에서 MSO와 MPP라는 거대 사업자가 출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토대가 과연 신산업의 성장동력이 되었을까? 다양한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MSO들의 노동실태를 보자. “지역 사업자”라는 명분으로 자체 제작한다는 지역채널의 제작인력들은 자회사로 떼어내어 사실상의 SO 영업지원부서로 만든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최근에는 이들 제작인력들에게 전문성을 무시한 1인 다역의 ‘멀티형’ 기자/PD가 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MSO 본사에서는 관리와 마케팅 부서의 직원만을 직접고용하고, 설치/AS/공사 등은 모두 “협력업체”라는 이름으로 하청, 재하청을 주며 단기 계약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본사가 이 협력업체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고용 및 노동조건 보장에 나설 리는 만무하다.

공정경쟁 vs. 공정보도?

전형적인 노동 유연화의 경로를 밟고 있는 유료방송의 자본화는 단지 유료방송만의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방송 콘텐츠 시장에서 만큼은 케이블 방송을 경쟁자로 간주하는 지상파 방송사 또한 이러한 자본화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SBS에게 계열PP들의 광고를 지상파 본방과 묶어서 판매할 수 있게 한 최근의 미디어렙 법안, MSO들과의 재송신 분쟁에서 일반PP들과 다를 바 없는 가입자당 가격(CPS: Cost Per Subscriber)을 택한 수신료 배분 방식 등은 이미 지상파로 하여금 “무료 보편적 서비스 사업자”임을 무색케 하고 있다. 급기야 최근 파업 와중에 불거진 MBC의 계약직 채용 공고는 까다로운 정규직 노조 흔들기라는 자본의 전형적인 노동 유연화 공세를 그대로 빼닮은 작태이다.

결국 방송시장 내 거대 자본의 출현은 지상파건 유료방송이건 제작에서 광고영업에 이르기까지 전 부문에 걸쳐 직․간접적인 효과를 낳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유료방송시장은 “공정경쟁”이 이뤄져야 할 시장의 영역이며, 지상파 방송은 “공정보도”가 이뤄져야 할 공적 영역이라는 순진한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전국 가구의 90%가 유료방송에 가입해 있다는 사실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 전국 가구의 90%가 거대 자본의 영향력 하에 놓일 위기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런 자본화의 효과에 대한 저항과 우려는 그동안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87년 6월 항쟁 이후의 ‘공정보도’라는 민주언론의 과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의 민주화가 방송의 자본화에 대한 방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며칠 후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출현할 거대 자본이 위와 같은 한국 방송의 잔혹사를 조금이라도 반성할 수 있을까? 막대한 제작비를 앞세워 콘텐츠 경쟁에 나설 자본을 앞에 두고 지상파 ‘공영’ 방송들은 과연 제작환경을 보다 ‘공정’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화답해야 할 목소리

개정안 통과가 자신의 이름을 감춘 자본의 투쟁임을 인정한다면, 누군가는 이에 맞설 또 다른 투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MB 정권 막바지의 지금, 오래된 과제를 다시 풀려는 지상파 노조들에게 이런 싸움의 주체가 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 개정안의 본질을 가장 먼저 깨닫고 호소하고 있는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바로 2010년 맥쿼리와 MBK 등 사모펀드들의 케이블 시장 진입에 맞섰던 씨앤앰(C&M) 노동자들이다. 이들이야 말로 한국 방송역사에서 방송의 자본화를 목도해 온 목격자들이다. 금융자본의 진입, 유명무실해진 SO들의 지역적 책무, 하청․파견․특수고용으로 점철된 노동 유연화 등 방송이 자본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투쟁들을 현장에서 겪은 이들이기에 이번 개정안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다르다. 이들은 CJ라는 거대 자본의 등장 뿐 아니라, 적자에 허덕이는 씨앤앰을 매각하려는 금융자본의 전술적 입지가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나아가 이전의 경험을 통해 최근 사측의 업무지시에서 또 다시 몰아닥칠 구조조정과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승계 거부를 내다보고 있다.

지난 26일의 토론회에서 씨앤앰 노조는 자사의 매각에 대한 우려 뿐 아니라 협력사들의 노동실태를 대신 고발하며 하청업체의 정규직 채용비율, 재하청 금지조항 포함, 하청 노동자의 고용보장 등을 인수조건으로 해야 한다는 요구조건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호소가 ‘공정보도’를 해야 하는 방송, ‘지역성’을 담보해야 하는 케이블 방송이라는 당위에서만 나오기는 힘들다. 방송이라는 영역이 단지 문화적 장이 아닌 자본이 침투하고 노동이 저항하는 투쟁의 장임을 간파하지 못했다면 나올 수 없는 연대의 요구인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들의 연대를 향한 목소리에 누가 화답할 것인가.

*2012년 5월 1일 미디어스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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